한아시아 52호 small | Page 35

Artiwara와 그의 기부행렬은 Betong에서 Mae Sai 까지 11 곳의 공립 병원에 기부할 돈을 모으기 위해서 지난 11월12일 Jimmy의 고향인 Nakhon Si Thammarat에 도착 했으며 수표를 기부해 화제가 됐다. 그가 헤드라인 뉴스가 되자 모든 사람들이 궁금해 했다. 나콘시 탐 마랏(Nakhon Si Thammarat)에서는 지미의 자 선적 행동은 이미 오래전부터 이야기 되고 있었고 부유한 기 업가로 알려진 그는 수년동안 다양한 자선 단체에 기부해 왔 다. 그는 장학금을 만들고 학교 급식 기금을 마련했으며 소외 계 층들을 위한 도움을 주는데 크게 기여 하고 있다고 한다. 그 는 “내가주는 돈은 단지 내 것이 아니다.” 수십년 동안 태국인 과 태국 국민의 은혜로 인해 가족이 부유하게 살았다면서 59 세인 그는 자신의 수입을 세 부분으로 나눈다고 설명했다. 첫 번째는 가게의 운영비를 충당하고 , 두번째는 아내에게 주는 생활비, 세번째는 녹색 고무줄로 묶어 “나에게 주는 마음의 평화” 라고 한다. 이 세번째 부분이 뚱뚱해 지면 그는 사회, 특히 나콘 시 탐마랏(Nakhon Si Thammarat) 사람들에게 기부 한다고 한다. 또한 “우리가 할 수 있는동안, 우리는 하고 싶은 일을 해야한 다. 우리는 온정을 주는 일을 해야한다” 고 그는 말했다. 지미의 조상은 Rama V 왕의 통치 기간에 태국으로 왔으 며 그의 아버지 Ramsingh는 1950년대에 Ramsingh Sit Suriya 라는 이름으로 싸운 전문 무예타이 복서 였으며 방 콕의 유명한 Rajadamnern 경기장에서 경기를 했다고 한 다. 무예타이를 그만 두고 그는 패브릭 세일즈맨으로 일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1970년대 지미는 인도의 시믈라(Shimla) 에 있는 비숍 코튼 스쿨(Bishop Cotton School)로 유학을 갔으며 그가 1975년에 돌아 왔을 때 그의 아버지의 예기치 않은 죽음으로 18세인 지미는 나콘 시 탐마랏(Nakhon Si Thammarat)에서 아버지의 직물 사업을 물려 받았다. 이 가 게는 지난 42년동안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가족에게 기회를 준 태국 뿐만 아니라 태국에 많은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고 한다. 지미의 자선 활동에 대한 이야기는 이 지방 사람들에게는 많 이 알려져 있었다. 2년전 아르티와의 수퍼런(Super-run) 에 1,600만 바트의 기부를 했고 그 전에는 Wat Phra That Woramahaviharn 에 있는 역사적인 탑의 황금 팁을 복원하 기 위해서 2,800만 바트의 전설적인 기부를 했다고 한다. 또한 이달 초 지미의 옷가게 근처에 있는 건물에 화재가 발생 해 연기로 인한 질식으로 병원에 입원 하게 되었다고 한다. 구조된 지미는 소방관들에게 100만 바트를 주었으며 사고가 났을 때 자신을 도운 두명의 가게 주인들에게도 지원을 약속 했다. 지미는 그가 행한 모든 큰 기부에서 항상 그 돈을 주인에게 전 해주는 것뿐이라고 한다. “나는 오늘 돈이 있지만, 내일은 아무것도 없을 수 있다” 라고 하며 만약 “사람들이 저에게 돈을 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내 아이들에게 그것을 전부 주어야 합니까?” 아마도 아닙니 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들의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에 그렇지 않 을 것이며 그래서 내가 남겨놓은 것을 나라에 돌려 주고 싶습 니다.” 라고 자신의 기부에 대한 생각을 전했다. 한아시아 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