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닭 같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박영보 수필 1집] 촌닭 같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박영보 수필 1집] | Page 98

상벌 규정도 없을 터인데도 어김없이 지켜지고 있는 그들의 법칙과 질서를 보고 있자니 내가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것이 그들 앞에서 조금도 자랑스러울 것 같지가 않다. 사람들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조급한 마음을 스스로 가누지 못하고 무턱대고 덤벼들기만 하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앞으로 어떤 난관이 닥칠지도 모른 채 서둘러 뛰어들다가 벽에 부딪혀 쓰러지거나 힘에 부쳐 주저앉고 마는 경우도 적지가 않다. 나 자신도 예외가 아닐 게라는 생각을 해보니 나의 삶이라는 게 기러기보다 나을 것이 하나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자연의 법칙과 질서에 한 치의 이탈도 없이 순응하고 있는 그들에 비하면 너무나 분별없이 살아온 것 같다는 생각에서이다. 그들은 그들의 삶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의 변동에 대하여 어떤 모습과 행동으로 대처해 나가고 있을까. 행복이나 불행 같은 것을 느끼며 기뻐하거나 의기소침해 하고 있을 때도 있을까. 자기 자신만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남을 곤경에 빠트리거나 자기를 세우기 위해 남을 모함하는 경우도 있을까. 결코 그럴 것 같지는 않다. 자기 자신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자신의 몸놀림 즉, 자기 자신의 노력으로만 해결해 나갈 수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무슨 원칙 같은 것을 알고 있을 것 같다. 분별없이 내 젖기만 했던 나의 날갯짓은 어떠했었는가. 겨울을 나기 위해 나서기는 했지만 떠나야 할 방향은 제대로 잡고는 있었을까. 막무가내로 퍼덕이기만 했던 날개의 힘은 이미 빠져있고 죽지에 남겨두었어야 할 마지막 기력마저도 쇠잔해져 가고 있는 지금인지도 모르겠다. 꿈? 나에게도 그런 게 있었던가. 하기야 막연하게나마 그런 게 있었기에 분별은 없었지만 허우적대는 날갯짓은 그치지 않고 반복해 온 것이겠지. 그러다가 이런 곳에까지 흘러 들어 오게 된 것이 아닐까. 마치 철새들이 그들의 살 곳을 찾아 떠나가듯이. 철새들은 그래도 눈보라나 비바람을 피하여, 풍성한 먹거리를 찾아서, 그리고 외부로부터 피해를 받지 않을 자유의 땅을 찾겠다는 그 이상의 욕심이나 망상 같은 것은 가지고 있지 않았을 게다. 다시 말해 자연의 법칙과 질서의 한계를 넘지 않는 순수에서만의 움직임이었을 뿐이었을 게다. 때가 되면 가깝던 멀던 거리를 가리지 않고 여정의 길을 나서는 그들, 그들은 자신의 날개를 접을 수 있는 장소를 찾으려는 것일 게다. 그리고 그들이 바라던 것을 끝내는 이루게 되리다. 나는 이민보따리를 싸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이 먼 여정이 시작될 때 나는 무슨 바램을 가지고 있었을까. 철새들처럼 단순하게 먹거리가 풍부하고 겨울나기에 알맞은 환경을 찾기 위해서였을까. 또 다른 더 큰 꿈의 날개를 펼치기 위해서? 그렇다면 그 꿈이라는 게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삼십 년이 지나고 있는 지금까지도 답을 찾을 길이 없다. 무작정 상경 식의 도피 행위는 아니었을까. ‘약속의 땅’이라는 그곳에 가기만 하면 내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이 마냥 널려져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을까. 노란 색으로 물들어있는 옆집의 은행나무 잎새들이 소슬한 가을바람에 날려 들어와 잔디밭 위에 뒹굴고 있다. 내 모습을 바라다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해마다 이맘때면 습관처럼 지나온 한 해를 거슬러 보는 게 일이었다. 그러던 게 언제부터인가는 더 먼 쪽부터 더듬는 버릇이 생겼다. 그러다가는 지금의 내 몰골을 바라보며 혼자서 피 식피식 웃기도 한다. 나에게 남아있는 잔여의 시간들에 대한 생각에 빠져있기도 한다. 처진 날개 죽지를 만지작거리며. 아직도 날개를 펼 수 있는 기력이 남아있을까. 나 자신과 함께 하는 동행들과 나눌 수 있는 양력을 일으켜 줄 수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