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닭 같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박영보 수필 1집] 촌닭 같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박영보 수필 1집] | Page 94

방송 언론에서는 이 쇠말뚝 제거작업을 큰 위업이나 달성한 것처럼 앞 다투어 보도하고 있었다. 어느 누구도 사적(史蹟)으로서의 존재 가치를 언급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쇠말뚝을 뽑은 그 자리에 “쇠말뚝 뽑은 곳”이라는 글자를 새긴 비석을 세웠는데 한마디로 웃기는 일이다. 실제의 산 증거는 없애버리고 이따위 비석을 세우려는 착상은 어떤 이들의 머리에서 나왔는지 알고 싶다. 우리는 지금 전쟁이나 천재지변으로 인하여 파손되거나 유실된 문화재나 사적지를 복원하려 하고 있다. 그런데 당국자들은 멀쩡한 사적지나 보존 자료를 막대한 예산과 인력을 소모하면서까지 철거를 단행했다. 도대체 그들의 머릿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는 것일까. 후세들에게나 한국을 찾는 세계만방으로부터의 방문자들에게 조선총독부 건물이나 쇠말뚝을 보여주면서 그 당시의 일제 만행을 설명해 줄 수 있는 산 증거를 스스로 파기하는 증거인멸. 후세들에게 믿거나 말거나 의 ‘전설의 고향’ 같은 얘기나 전해주려는 발상인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최근 이곳 미주지역에서 미주한인 이민 백 주년을 앞두고 ‘구 국민회관의 복원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것을 보면 더더욱 아쉬운 마음이 든다. 무턱댄 반일 감정이 마치 홧김에, 자기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물건을 내팽개쳐 박살을 내고 나서 후회하고 있는 꼴을 보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일본은 지금까지도 그들의 왜곡된 역사교과서 내용에 대한 수정 계획이나 사과 한마디 하려 들지 않고 있다. 이러한 그들에게 그날의 상처가 아직도 생생한 현장을 보여 주었어야만 했다. 그들에게도 인간으로서의 사고와 판단력, 또는 최소한의 양심이 있다면 이러한 물증을 실제로 본 후에는 자신들의 만행을 부인하려 들지는 못 할 것이다. 그들이 마음속으로나마 인정을 하고 미안해 할 수 있는 물증을 스스로 파기시킨 것은 우리들 자신이다. 증거인멸의 직접적인 당사자도 당사자이지만 시민들의 의식에도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우리 모두가 이 철거작업을 제지시켰어야 했다. 민주화를 위해 목숨을 담보로 하며 4.19 나 광주항쟁을 주도했던 우리가 이 같은 증거인멸의 현장을 강 건너 불 보듯 바라다보고만 있었다. 일본에 대하여 그토록 너그러웠었나 하는 억지 같은 생각도 해본다. 쇠말뚝을 뽑아내어 되살아난(?) 그 ‘기’를 나라 경제가 어떻게 되든 머리띠를 두르고 집단 이기주의를 위한 태업 같은 데나 쏟아 부으려는 것은 아니었는지 모를 일이다. 한번 소멸된 흔적은 또다시 되찾을 수가 없다. 이제 우리의 후세들에게, 이웃 우방들에게, 상처로 뒤범벅된 일제로부터 받은 우리의 아픈 과거를 무엇으로 증명을 할 수가 있을까. 수없이 많은 증거를 두고도 ‘오리발’을 내미는 일본인들에게 내세울 수 있는 물적 증거는 이제 사라져 버렸다. 사십여 년 전 친구의 눈두덩에 남겼던 상처, 그 증거가 없어져 버려 그 친구에 대한 양심의 가책 같은 것 마저 희미해 져가고 있는 지금, 한국인 스스로가 ‘증거를 말살’ 시킨 위업(?)에 대하여 “휴우--”,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을 일본을 생각하니 공연히 밸이 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