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닭 같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박영보 수필 1집] 촌닭 같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박영보 수필 1집] | Page 87

도브의 둥지는 기역(ㄱ)자 모양의 구조로 되어있는 우리 집의 화장실과 대치된 위치에 놓여 있다. 화장실 창문만 열면 그들의 동태를 살펴 볼 수 있는 위치이다. 그렇지만 거리가 멀어 도브가 둥지에 있는지의 여부를 정확히 파악하기는 쉽지가 않다. 돋보기안경만으로는 어림도 없어 소형 망원경을 이용하니 도브가 있는지 없는 지와 동태를 파악하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이제 남은 일은 이들이 물에 젖지 않게 해주는 일이다. 수시로 망원경을 통하여 살펴보며 어미 도브가 휴식이나 먹이를 찾으려 잠깐씩 둥지를 비우는 사이에 잽싸게 나가 물을 주면 되리라. 새끼 도브가 완전히 자라 스스로 날아다닐 수 있는 기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나 그때까지는 이 일을 반복하리라. 말로도, 행동으로도 의사소통이 전혀 불가능한 인간과 한 쌍의 들새와의 관계. 말이나 행동으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시부모를 모시고 있는 며느리의 역할도 이보다는 훨씬 쉬울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인간으로서 그들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이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답을 구할 수가 없다. 다만 그들에게 불안감을 조성해주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그들 앞에 얼씬거리지도 않는 것만이 최선의 길인지도 모른다. 그들이 한 동안 우리 곁에만 있어주고 ‘구구구’ 하는 소리와 푸드덕 나는 소리를 들려주기만 해도 고맙고 행복할 것만 같다. 이들에게 상전(上典)을 모시듯 눈치를 보며 지내는 일도 기분을 상하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패티오의 미닫이만 열고 나가면 바로 뒷마당의 텃밭에 나갈 수가 있다. 그런데도 이런 지름길을 놔두고 집을 뺑뺑 돌아서 나가야 하는 일도 불편하거나 귀찮게 느껴지지가 않는다. 이삼십 미터 거리에서의 인기척에도 놀라 푸드덕 날아가 버리던 이들은 이제 십여 미터 전방까지 접근을 해도 제 자리를 떠나지 않는다. 눈을 더 동그랗게 뜨고 두리번거릴 뿐 날아가지는 않는다. 우리를 조금씩이나마 믿어주는 것 같은 이들이 고맙기도 하다. 알에서 태어날 새끼 도브가 자라서 어미와 함께 푸른 하늘로 날아 갈 수 있는 그날까지 나는 이 상전 모시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내년에도 내 후년에도 또다시 우리를 찾아 준다 해도 기쁘고 반갑게 맞아 줄 것이다. 그들이 원하는 한 언제까지라도 그들을 위해 그 자리를 비워놓고 기다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