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닭 같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박영보 수필 1집] 촌닭 같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박영보 수필 1집] | Page 79

언론은 로드니 킹 사건에 대한 재판의 결과가 불씨가 되어 발생한 이 사건이 한인 타운으로까지 번진 폭동을 마치 한 흑 간의 갈등 에 의한 사건이기나 한 것처럼 다루고 있었다. 이러한 현지 언론에서 어떤 공평성 같은 것을 기대 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었다. 언론에서 다루어진 몇 줄의 기사는 폭도들에 의해 저질러지고 있는 폭력이나 약탈 또는 방화보다도 훨씬 무서운 파괴력을 보이기도 했었다. 당시 몇 년 동안을 피땀으로 일구어 놓았던 조그만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약탈당하고 불 태워진 후 새 길을 찾아 텍사스로 떠났던 아내의 친구로부터 최근에 전해온 편지 내용을 간추려 본다. <전략> 잊고만 싶었고, 조금은 잊혀져 가는 것 같기도 했던 지난 그 날의 악몽. 이제는 망각 속으로 까맣게 사라져 가고 있는 생각들을 되돌아보자니 그 날의 아픔이 되 살아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아마도 인간들에게는 망각이라는 것이 있기에 그나마 삶을 지탱해 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먹고 싶은 것 먹지 못하고, 하고 싶은 것 하지 못하며 허리띠를 졸라매야 했던 지난 날들. 꼭두새벽, 떠지지 않는 눈을 비벼가며 나섰다가 자정이 돼야만 귀가를 하게 되는 일은 일 년 중 단 하루의 예외도 없었습니다. 피와 땀으로 일구어 놓은 작은 삶의 터전이 폭도들에 의하여 짓밟히고 약탈당하며 불에 타 연기가 되어 사라져 가고 있는 치안의 부재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면 뒷전에서 멍청히 바라다만 보며 발을 동동 구르며 울부짖는 일밖에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새로운 살길에 대한 정보를 찾기 위해 매일같이 폭동 피해자협회에 나가 기웃거려야 했고, 구호물품을 타기 위해 긴 줄에 서서 장시간을 기다리기도 했던 일들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한참을 기다린 후 묵은 빵 몇 덩이와 시리얼 봉지를 타가지고 집에 돌아오면 “이제는 우리가 굶어 죽지는 않게 되었다”며 좋아하던 철부지 아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피눈물을 뿌려야 했던 일도 떠오릅니다. 우리 같은 피해자들을 돕겠다고 나서는 주위의 따뜻한 손길들이 고맙기는 했지만 잿더미로 변해버린 삶의 터전을 되살리기에는 턱도 없었습니다. 정부로부터의 피해 보상 같은 것을 기대도 해봤지만 결국 SBA 융자라는 빚만 짊어지게 되었고 겹쳐지는 불경기로 인해 피해자들의 신용도만 나빠지는 등 악의 수렁 속으로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죽을 수밖에 없었던 그 시절에 비하면 지금의 생활에 대하여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하겠지만 이 사건을 통하여 나 자신과 우리 커뮤니티의 과거와 현재를 되돌아보고 미래를 내다보는 우리의 자세에 대하여는 한번쯤 재점검을 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중략> 매년 4 월 이 되면 각 언론에서는 이 사건을 특집으로 다루며 억울하게 당하기만 한 우리들의 지난 모습만을 집중적으로 재조명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 한인들이나 한인 업소가 그들의 공격 목표가 되었던 직접 또는 간접적인 또 다른 요인이 있었다면 그것이 과연 무엇이었을까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억울하게 당한 것에 대해 분하고 속상해 하고만 있기에 앞서 “왜, 하필이면 우리가 그들의 표적이 돼야 했을까”를 한번쯤이라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어쩌다 업소 주변의 주민들을 불러놓고 불고기 파티를 열어 주는 것 같은 속 보이는 일회용 선심만으로 그들과의 화합이 이루어 질 수가 있다고 판단을 해서는 안 될 것이라는 생각도 해본다. 그들은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단순하거나 어수룩하지가 않다. 내가 남으로부터 인정을 받고 존중 받기를 바란다면 우선 내가 먼저 상대방을 인정하고 존중을 할 수 있는 근본적인 마음의 자세를 갖추어야 할 것이라는 생각도 해 본다. 이것이 우리들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또 다른 하나의 방편이기도 할 것이고 공생을 할 수 있는 길이기도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어쨌든 우리는 그 많은 어려움을 딛고 또다시 일어섰다. 더 많은 성장과 발전이 있을 것이라는 확신도 갖는다. 이것이 우리가 빈손으로 와서 피와 땀만으로 일구어 낼 수 있었던 본보기였고 앞으로도 이어져 갈 우리의 저력일 것이다. 서두름 없이 여유롭고 세련된, 그리고 화합과 조화로 이루어진 <우리만의 것>으로 이루어져있을 미래의 타운, <코리아타운>의 모습을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