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닭 같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박영보 수필 1집] 촌닭 같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박영보 수필 1집] | Page 76

한국인의 친절 한국을 떠나 이곳에서 생활을 해 온 지도 삼십 여 년이 지났지만 업무 차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느끼는 것은 모든 것이 낯설고 생소하여 많은 어려움과 불편을 겪게 된다. 우선 한국의 도시 구획이 이곳과 달리 주요 공공장소나 잘 알려진 대형건물 같은 경우를 제외하고는 어디를 찾아가기가 쉽지가 않다. 그러나 그 지역에 대하여 자세히 알지 못하고 있는 지역 특히 개인 주택 같이 택시 기사에게 방향 제시를 해줄 수가 없는 경우 그 집의 번지수만 가지고는 그 목적지를 찾아가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이럴 경우 조카아이들이 적어준 대로 전철이나 버스 등의 대중 교통수단을 이용해야 하는데 더러는 가야 할 방향의 지하철역이나 버스 정류장의 위치를 몰라 사람들에게 물어봐야 할 경우가 많다. 다른 보행자들이나 이곳 저곳에 있는 소형 가판 부스에 가서 기웃거리며 물어볼 경우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단 한 번도 친절하고 상세하게 알려주거나 안내를 해주는 경우를 경험한 기억이 없다. 예로 역촌동 버스를 타자면 어디서 무슨 버스를 타야 하느냐고 물으면 “53 번을 타슈” 하여 “53 번은 어디서 탑니까?” 라고 물으면 얼굴을 빤히 쏘아보며 “여보, 그럼 날더러 거기까지 데려다 달란 말욧?” 하고 쏘아붙이는 이도 있다. 정확한 방향을 지적해 주지도 않으며 “저쪽으로 가보슈” 하며 허공에다 대고 손가락을 올렸다 내리며 퉁명스럽게 내뱉고 돌아서버린다. 설마 나를 하늘로 올라가라는 말은 아니겠지. “저쪽이 어느 쪽인데요?” 라고 감히 재차 물어볼 엄두조차 낼 수도 없을 만큼 위압적인 자세로 나오기 때문에 되묻기를 포기하고 만다. 친척이나 목적지의 사람들에게 전화를 해서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데 어느 쪽에서 몇 번 버스를 타야 되느냐”고 물어봐야 했던 경우도 한 두 번이 아니다. 지금은 서울 시내 거리의 여러 곳에 공중전화 부스가 마련되어 있고 전화카드라는 것이 있어 편리해 지기도 했지만 동전을 이용할 수 있는 공중전화도 있다. 단 한 번의 전화를 걸기 위해 카드까지 살 필요가 없어 동전을 바꿔야 했다. 서울역 앞의 한 약국에 들어가 “전화를 하려는데 동전 좀 바꿔 주실 수 있겠습니까?” 라고 물었더니 가슴에 약사 XXX 라는 명찰까지 달고 있는 분이 “여기는 약을 파는 곳이지 동전 바꾸어 주는 데가 아닙니다.” 라는 한마디로 잘라버리는 것이다. 마치 약국에서 약을 파는 일 외에 지역 주민이나 지나치는 사람들의 사소한 필요를 충족시키는 일 같은 것은 자기의 소관이 아니라는 것을 일깨워 주기라도 하려는 것 같은 자세다. 바뿐 비즈니스에 동전 바꾸어 주는 일 같은 것이 귀찮기도 하고 반가운 일도 아니겠지만 “미안합니다. 지금 마침 동전이 다 떨어졌는데요.”하는 식으로 선의의 거짓말로도 나같이 달갑지 않은 불청객을 내 쫓는 방법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무자비하게 <묵사발>을 만들어 놔야만 직성이 풀리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이러한 일을 당한 사람이 차후에 실제로 약을 필요로 하게 될 때 또다시 그 약국을 찾아가게 되리라는 기대 같은 것을 하고는 있을 것인지가 궁금하기도 하다. 오래 전 이곳의 모 일간지에 “한국의 코리언들 정말 친절해요. 한국인들은 손을 끌다시피 지하철역을 안내해 준다”며 한국인들의 친절에 대하여 극구 칭찬하고 있는 한 외국인 여행자의 말을 사진과 함께 소개된 기사가 있었다. 실소를 금할 수가 없었다. 이러는 내가 어쩌면 같은 한국인으로서 자학에 빠져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누가 자기보다 강하다 싶으면 비굴할 정도의 저자세로 임하고 또 누가 자기보다 약하다고 판단되면 짓밟고 군림 하려 드는 모습을 한두 번 보아온 것이 아닌 나로서는 속된말로 “웃기는 일”이랄 수밖에 없다. 그 여행자가 노랑머리와 푸른 눈을 가지고 있지 않고 나같이 허술한 캐주얼 차림의 엉거주춤한 모습의 한국인이었다 해도 이러한 친절이 베풀어 졌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모든 가치 판단의 기준을 물질적인 것에 두고 있는 우리 주변의 모습들을 되돌아본다. <한국 방문의 해>를 홍보하기 위해 대통령까지 광고 모델로 등장하는가 하면 다가오는 월드컵 축구의 개최 일에 대한 카운트다운에 들어가 잇는 우리의 주변을 바라다보자니 답답하기도 하고 심난하기가 이를 데 없는데 언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