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닭 같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박영보 수필 1집] 촌닭 같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박영보 수필 1집] | Page 75

콘크리트 벽의 매미들 작년 여름 이맘때였나 보다. 서울에 출장을 갈 때마다 대부분 서울의 가락동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누님 집에 머물게 된다. 8 월의 더운 날씨에 방충망이 있는 창문을 열어놓고 있으면 도심의 콘크리트 숲 사이사이를 여과하여 들어오기는 할망정 불어오는 바람은 제법 신선하다. 가끔 시간이 되면 남산 타워에 올라가 서울의 전경을 내려다보던 일이 있었다. 고층 건물들로 숲을 이루고 있는 대 서울의 스카이라인이 뉴욕이나 시카고 같은 국제도시의 겉모습과 비교를 해봐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그러나 서울 거리에 즐비하게 늘어선 나무들, 고급 수종인 은행나무의 잎새 하나하나가 먼지와 매연으로 누더기 진 것을 바라다보면 답답해지기도 한다. 내가 이곳에 오게 된 70 년대 초만 해도 서울에서 인근의 안양이나 인천 또는 수원 정도의 주변 도시를 여행 하자면 도시와 도시 사이에 녹지와 농지를 지나치며 길지 않은 시간 일망정 얼마 동안 이나마 전원의 풍경을 바라볼 수가 있었다. 이제는 서울 주변의 인근 도시와 도시의 사이에는 빈 공간이 전혀 없는 것 같다. 마치 전 국토가 하나의 거대한 도시로 변해 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안양지역의 포도밭이며 세검정 쪽의 자두 밭, 그리고 소사 지역의 복숭아밭들이 아직도 흔적을 남기고 있는지가 궁금해지기도 한다. 주말 오후 누님 집의 거실 소파에 기대어 신문을 뒤적이고 있는데 멀지 않은 곳에서 매미 소리가 들려온다. 귀를 기울여 보니 한곳에서만 나는 소리가 아니다 싶어 창문 밖을 내다보았다. 건물 밖 주변을 바라다보니 고층의 아파트 건물 벽 여기 저기 수없이 많은 매미들이 붙어 있었다. 각자마다 자기들의 목청을 높이고 있었다. ‘매미가 있을만한 곳이 아닌데’라고 생각 하면서도 신기한 호기심으로 한참을 바라다보고 있었다. 더러는 이러한 콘크리트의 벽에서 짝짓기를 하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눈을 감고 도심 속의 숲을 연상하며 매미들의 합창소리를 감상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갑자가 지척에서 크게 들려오는 소리에 눈을 떴다. 거실의 방충망에 붙어있는 쓰르라미가 목청을 높이고 있었다. 이 매미가 놀라서 날아가지나 않을까 싶어 몸도 움직이지 않고 바라다보며 이 노랫소리를 듣고 있는 중이었다. 이 때 밖에 나갔던 누님이 돌아왔다. “에이 시끄러워”하며 수건으로 방충망의 앞쪽을 내려친다. 자동차가 급정거를 할 때의 마찰음을 내듯 끼익 하고 비명을 지르며 날아가 버린다. “누님도 참, 이런 콘크리트 숲 속에서 매미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도 다행이고 이런 모습 보기가 쉽지도 않을 텐데 왜 쫓아 버리느냐”고 하자 “어쩌다 한 번씩 듣는 것도 아니고 온종일 저 야단들이니 시끄러워 견딜 수가 있어야지”라며 멋쩍게 웃는다. 숱한 자동차의 경적소리나 야채 장수들이 고성능 마이크로 호객을 하기 위해 소리치는 소음에는 익숙해 있으면서도 이렇게 귀하고 아름다운 자연의 소리를 소음으로 여기다니. 짜증까지 내야 하는 서울 시민들의 메마른 정서에 대하여 한번쯤 생각을 해보게 된다. 얼마 전 TV 의 다큐멘터리로 소개된 메뚜기의 서식처가 떠오른다. 당연히 우리 주변의 논밭에 있어야 할 메뚜기들이 농약과 공해로 찌든 우리들의 논밭에서는 더 이상 견딜 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