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닭 같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박영보 수필 1집] 촌닭 같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박영보 수필 1집] | Page 71

잡초를 뽑으며 “미안하다, 민들레야”. “질경아, 용서해라” 이 한 포기씩의 잡초를 뽑아내기에 앞서 나는 한참 동안을 망설여야 했다. 내가 이곳에서 이들을 처음 만나게 된 것은 고국을 떠나온 지 만 십일 년이 지난 후였나 보다. 그렇지만 이것은 고국을 떠나온 이후부터의 계산된 기간이 되겠다. 더 자세히 더듬어 본다면 이들과의 만남은 아마 이십 년이나 삼십 년도 훨씬 지난 후의 첫 만남이었다고 해야 할 것 같기도 하다. 이 들풀들에 대하여는 초등학교 때 밥상에 반찬으로 오르던 시절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리라. 이들에 대한 기억은 그 시점에서 멈추어져 있었으니 말이다. 그 이후부터는 질경이나 민들레라는 들풀과의 만남은 마감이 된 셈이고 이들에 대하여 관심조차 두고 있지 않았으니 기억에서도 사라져 있었다고 하겠다. 이런 곳에서 처음으로 만나게 된 그들이 그렇게나 반가웠을까 싶기도 하다. 하잘것없는 들풀 몇 포기를 대하며 이렇게나 반갑고 기뻐하고 있는 걸 보면 그 동안 내가 얼마나 메마른 삶을 살아왔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마치 실향민들이 주려온 그리움으로 가득 차 있는 것과 같은. 이 집으로 이사를 해온 지도 삼십 년이 돼간다. 나이 팔십이 넘은 노인 부부가 살면서 집안이나 정원의 손질 같은 데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 같았다. 테니스장이라면 두 개라도 너끈히 들어설 수 있을 만큼 널따란 뒷마당은 마치 임자도 없이 내 팽개쳐져 있던 황무지와 다를 바가 없었다. 뒷마당의 상당한 부분은 참 대나무들이 사람이 통과하여 빠져나갈 수조차 없을 만큼 빽빽한 숲을 이루고 있었고 마당의 삼분의 일 정도는 담장이 넝쿨과 비슷한 덩굴식물인 아이비 넝쿨로 덮여 있었다. 나머지 부분은 허리까지 오는 잡초들이 무성해 있었다. 수년간 사람의 손길이라고는 단 한 번도 스치지 않았을 것 같았다. 내게 엉뚱한 욕심이 생기게 된 것도 이 무렵이었던 것 같다. 이 자연 상태를 보존하고 싶다는. 도심의 일개 주택이 야생동물들의 조그만 천국이 된다는 것은 꿈같은 일일 것도 같았다. 나의 집터에 그들이 찾아준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고 축복일 것도 같았다. 마당 전체를 그대로 방치해 둘 수는 없을 것 같고 일부분만이라도 현재의 상태를 보존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꿈이라는 것은 꿈으로 마감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도 같은 시기였다. 나 혼자만이 사는 것이 세상이 아니라는 사실은 내가 아무리 원하고 좋아하는 일일지라도 생각을 고쳐야만 할 때가 많다. 들이나 야산에서 자라고 있는 벼룩이나 풀 진드기 같은 벌레에는 사람에게 치명적인 병원균을 가지고 있어 야생 동물들이 매체가 되어 사람들에게 감염시킬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시(市) 산하의 보건당국으로부터의 단속 대상이 될 수도 있고. 뿐만 아니라 직접적으로 불평을 말해 오지는 않았지만 이웃으로부터 눈총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대로 방치해 둘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조금씩 정리를 해 나가자는 마음의 결정을 하게 되었다. 매 주말마다 하루 몇 평씩 정리해 나가겠다는 계획아래, 낫과 괭이, 삽과 톱 또는 전지가위까지 준비해 놓고 자르고 뽑고 옮겨 심는데 걸린 시간은 거의 일 년이라는 시간이 소요되었다. “어라, 이런 게 여기에도 있었네.” 잡초 속에서 파랗게 자라고 있는 고향의 들풀들. 정리를 해 나가다 보니 민들레도 있고 질경이도 있으며 명아주와 쇠비름도 있었다. 반가웠다. 고향의 옛 친구를 만나는 기쁨 같은 것도 느낄 수 있었다. 맛깔스럽게 나물을 무쳐 밥상에 올려주시던 할머님과 어머님의 모습을 떠올릴 수도 있었다. 콩밭을 맬 때 나물로 쓸 수 있는 풀들을 따로 모으시던 그분들을 대하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들을 하찮은 잡초 정도로 여기며 뽑아 없애야 할지 아니면 그대로 놔두어야 할지에 대한 갈등도 생겼다. 대학 다닐 때 친구 하나가 나에 대하여 “이 X 식은 살아있는 풀 한 포기도 발로 밟을 놈이 아니야”라고 하던 말이 생각난다. 그 친구는 나의 답답하기 이를 데 없이 앞뒤가 꽉 막혀있고 융통성이 없는 나에게 흉을 보며 하던 불만 섞인 말이었지만 나에게는 그의 이런 말은 나에 대한 칭찬처럼 들리기도 했던 것 같기도 하다. 속으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