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닭 같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박영보 수필 1집] 촌닭 같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박영보 수필 1집] | Page 69

어떤 배신 이렇게 엄청난 사건의 당사자가 될 뻔했던 나는 그들의 배신에 대하여 오히려 감사를 드려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누구에게, 또 무엇에 대한 감사를 드려야 한단 말인가. 어처구니없이 마셔야만 했던 쓴 잔. 가슴 언저리엔 아직도 그 씁쓸한 뒷맛이 가셔지지 않고 있다. 내가 이런 상황에서 무엇에 대한 감사를 드려야 할는지를 생각해 보니 우습기도 하다. 한국의 모 기업으로부터 중고 헬리콥터를 구입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헬리콥터를 수입하려는 회사는 꽤나 든든한 재원을 밑바탕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D 사였다. 이미 포항에서 울릉도까지 일반 여객이나 관광객을 위한 선박 페리(Ferry)를 운항하고 있었는데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회사라고 했다. 사세 확장의 일환이기도 하며 운항시간의 단축은 물론 승객들의 편의 도모와 보다 효율적인 운영을 목표로 헬리콥터를 구입하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즉시 컬럼비아 헬리콥터회사와 상담에 들어갔다. 이 회사는 오리건 주의 포트랜드에 있는데 중고 헬리콥터를 판매하고 있었다. 정부기관이나 군으로부터 불하 받은 각종 중고 헬리콥터를 정비 또는 재생을 하여 판매하고 있는 회사였다. 나는 컬럼비아사측에 한국 측에서 요구하는 헬리콥터의 용도(Application)를 제시하며 이에 적합한 몇 가지 기종을 추천해 줄 것을 의뢰했다. 컬럼비아 사에서는 자기네가 추천하는 두세 가지 헬리콥터의 사양 (Specification)과 비행일지, 정비기록 등 상세한 자료를 견적서와 함께 보내왔다. 헬리콥터를 포함한 모든 항공기들은 평소에 어떤 고장이나 이상이 발견되지 않더라도 정기적인 정비를 해야 한다. 정비를 한 날짜와 정비 내역을 기록하는 것은 물론 비행일지도 기록하여 항상 비치해 두고 있다. 마치 병원에서 작성한 각 환자의 메디컬 레코드처럼 항상 보관돼 있어야 한다. 이는 크고 작은 항공사고에 대한 사전 대비책이기도 하다. 지상에서의 차량이나 해상에서의 선박에 어떤 고장이나 이상이 생기면 정지된 상태에서 운행을 하지 못하는데 그치고 정비소로 견인해 가면 되지만 항공기 종류는 여차하면 높은 하늘에서 폭발하거나 추락을 하는 대형 사고를 일으키게 되므로 사전의 철저한 정비기록과 비행일지를 작성하여 보관을 하는 것은 필수라고 한다. 한국 측에서는 내가 보낸 두세 가지 기종의 자료와 견적을 검토한 후 한 대를 구입 키로 결정하여 계약 단계에 이르게 되었다. 채택된 헬리콥터는 원래 조종사를 포함하여 열아홉 명이 탈 수 있는 기종이었다. 그러나 한국인의 체구가 서양인보다 작고 가볍기 때문에 의자의 크기와 간격을 재조정하여 두세 명이 더 탈 수 있도록 개조하기로 되어 있었다. 한국의 구매자 측에서는 신용장(Letter of Credit)을 개설하기 전에 최종 계약을 체결하기 위해 담당 이사와 엔지니어 및 재정 담당자가 미국을 방문하기로 돼 있었다. 컬럼비아 사 측에도 우리와의 계약 체결을 위해 방문할 날짜와 시간까지 정해놓고 한국의 구매 단이 도착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약속된 방문 하루 전까지도 한국에서는 미국 도착일정을 알려오지 않았다. 수 차례 전화를 해도 담당자들이 자리에 없다는 것이었다. 연락처도, 연락을 취할 방법도 없으며 언제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비서의 반복되는 말뿐이었다. 컬럼비아 사와의 회의가 약속돼있는 금요일 아침까지도 연락이 없었다. 나는 컬럼비아사측에 이들의 도착이 늦어지는 이유도 설명하고 방문일정을 재조정하기 위해 연락을 해 주어야만 했다. 담당 이사에게 전화를 했다. “한국으로부터 아직 미국 도착 일정을 확인 받지 못하고 있는데 혹시 비자(Visa) 문제로 지연되고 있는지 모르겠다. 확인 되는대로 곧 알려 주겠다”며 선의의 거짓말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딴에는 선의의 거짓말이었지만 이렇게 낯 뜨겁고 민망스러운 일을 당하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는 웃는 목소리로 “그 사람들 지금 이곳에 도착하여 현재 회의 중에 있는데 통화를 해보겠느냐”라는 것이었다. 나는 억지로 태연한 척 “아, 그러냐? 잘 됐다. 나중에 회의가 끝나면 그때 통화를 해도 되니 우선 회의를 계속하라.”며 전화를 끊었다. 이것이 내가 그에게 할 수 있는 오직 한마디의 말이었다. 그 동안 내가 쏟은 시간과 경비, 노력의 결과가 허무하게 무너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허무했다. 이 거래를 성사시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