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닭 같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박영보 수필 1집] 촌닭 같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박영보 수필 1집] | Page 59

것 같기도 하다. 내가 나 자신을 중하게 여기는 것처럼 상대방도 중하게 여기면서 하는 말이라면 듣기에도 거슬릴 것 같지도 않다. 세상을 살다 보면 간혹 이런 말을 해야 하게 될 때도 있고 꼭 해주고 싶을 때도 없지 않다. 그런 경우를 겪었던 몇 가지 일들을 더듬어 본다. 내가 자영업을 시작하기 전까지 상당한 기간의 직장생활을 한 적이 있다. 설립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중소기업의 무역 부서에서 일을 해 왔다. 입사를 하여 퇴사를 할 때까지 나는 매사에 임하는 나름대로의 원칙이랄까 신념 같은 것을 세워놓고 있었던 것 같다. 신입의 말단 직원이었을망정 나는 그 회사의 주인이며 내 자신의 비즈니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단순한 어떤 책임의식이나 애사정신, 또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자기의 현재의 위치를 지키기 위한 방편에서는 아니었다. 주인의식이라든가 자기 자신의 비즈니스라고 단정 지울 수 있었던 이유를 설명하라면 아주 간단하다. 한마디로 내가 현재 쏟고 있는 시간과 노력의 대가로 임금이라는 것을 받고 있다. 그 급료로 나 자신과 가정을 꾸려나가고 있다. 이것이 내 자신의 비즈니스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비록 현금을 출자하지는 않았지만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고 있는 사람이다. 회사의 수익이 많아지면 직원들에게 돌아가는 것도 그만큼 푸짐해지고 망하면 직원들의 생계에도 균형이 깨지기 마련이다. 물론 이러한 수치의 계산에 의해서 각자의 행동이나 생각을 하자는 것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구태여 자본과 경영의 분리 같은 경영학 수업이 필요할 것 같지도 않았다. 회사나 아니면 자기가 소속돼있는 어떤 단체에서 자기가 행하고 있는 일은 그 회사나 그 단체를 위한 일이기도 하지만 자기 자신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 누군가가 나에게 “무슨 일을 하고 있느냐”고 물으면 “내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라며 건방을 떨 수는 없겠지만 마음속으로는 서슴없이 “내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고 소리칠 수 있을 것 같았다. 적당히 시간만 때우고 한 달에 한 번씩 나오는 월급봉투나 기다리는 스타일의 직장생활을 한다는 것은 나 스스로가 용납할 수가 없었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고 있다. 변화라는 것을 발전이라는 것과 대비하며 보면 언제나 새로운 것이 지난 것보다야 좋을 것으로 여겨지는 경향도 없지 않은 것 같다. 사실 변화라는 것은 지난 것들에서 느껴지거나 발견되는 부족한 부분에 대한 개선을 하여 보완한다는 것을 전제한 것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더러는 이러한 변화가 무섭게 느껴지기도 하니 어인 일일까.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되는 물질문명의 발전에 대한 우려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성의 상실, 메말라 가는 인정, 자기의 조그만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 저지를 수 있는 시대가 무서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너는 너’, ‘나는 나’라는 사실이 현실적으로 분명하게 구분된다는 것에서 오히려 소외감과 외로움을 느끼게 되기도 하는 지금 오늘따라 나는 ‘너는 곧 나’, ‘나는 바로 너’, 이렇게 신뢰와 우정을 함께 나눌 수 있던 친구가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