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닭 같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박영보 수필 1집] 촌닭 같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박영보 수필 1집] | Page 58

너와 나 주변에서 ‘나의 것’이나 ‘너의 것’에 대하여 이야기가 나오게 되면 조심스레 귀가 기울여진다. ‘내 것이 네 것’이고 ‘네 것이 곧 내 것’이라는 말을 어렵지 않게 하는 경우를 보게도 된다. ‘나의’라든가 ‘너의’라는 말은 무엇인가에 대한 소유를 나타낼 때 쓰는 말로 이해가 간다. 그런데 ‘내 것’과 ‘네 것’이라는 것을 이렇게 애매모호하게 사용하고 있을까 싶을 때가 많다. ‘나의 것이 너의 것’이며 ‘너의 것이 곧 나의 것’이라는 말. 단순히 소유의 의미로만 생각한다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어떻게 내 것이 네 것이 되며 네 것이 내 것이 될 수 있다는 말인가. 하지만 ‘너’ 즉 상대방에 관련된 어떤 일을 ‘나’의 일처럼 중히 여기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라는 데에는 어떤 이의를 달 필요를 느끼지도 않는다. 우리 식의 정서로 볼 때 이처럼 상대방에 대한 신뢰와 다정다감한 마음의 표시가 또 있을까 싶기도 하다. 실은 나도 이와 비슷한 말을 했던 적이 있다. 지금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지만 아주 절친하게 지내던 친구에게 했던 말이다. 세상을 떠난 지 삼십 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도 그를 수시로 생각하고 있다. 지금도 가끔 꿈속에서도 만나고 있는걸 보면 그와는 너와 나, 네 것이나 내 것에 대한 구분 같은 것을 필요로 하지 않았던 그러한 사이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가 어떤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그에게 나의 작은 마음으로나마 무언가 위로나 도움의 말을 해주고 싶었었다. 그는 이러한 나에게 고맙다는 말을 해왔다. 이럴 때 내가 했던 말이 ‘네 일이 내 일이고 내 일이 네 일이다’라는 식의 말이었던 것 같다. “천만에”라던가 영어에서의 "You are welcome"이나 “My pleasure"와 같은 의미의 말을 더 진하게 표현하려 했던 것이었을 게다. 서로 간에 강한 신뢰와 우정이 담겨, ‘너의 기쁨은 나의 기쁨이요 너의 슬픔은 곧 나의 슬픔’이기도 하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무거운 짐도 함께 지겠다는 강한 우정의 표현으로 ‘너와 나’ 사이에 무슨 이해(利害)에 대한 저울질 같은 거나 어떤 소유의 문제를 놓고 다툼이나 갈등 같은 것이 있겠느냐는 뜻도 담겨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주변에는 ‘나’는 있어도 ‘너’는 없고, ‘내 것’은 중요해도 ‘네 것’에 대하여는 내가 상관할 바 아니라는 식의 냉랭함이 느껴질 때가 많다. 나 자신만을 위해 쏟아야 하는 시간과 노력만으로도 버거운데 까짓 내 일이 아닌 다른 사람의 일에 신경 쓸 일이 무엇이냐는 듯 한 메마른 감정. ‘너는 너’ ‘나는 나’라는 말 자체가 이치에 조금도 어긋나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모를 바는 아니지만 무언가 삭막해져 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래도 ‘너는 나’, ‘나는 너’라는 정서 속에서 살고 있을 때는 비록 배는 곯더라도 마음으로나마 허기를 느끼지는 않았었다. 이웃에서의 좋은 일이나 궂은일에도 함께 좋아도 하고 슬퍼도 하며 한 조각씩의 나눌 수 있는 마음이 따사롭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내’가 아니라 ‘우리’, ‘내 동네’가 아니라 ‘우리 동네’ 또는 ‘우리 집’이라는 개념의 정서 속에서 살고 있을 때는 이웃을 위해 흘리는 몇 방울의 땀을 아까워하거나 억울해 하지도 않았었다. 이곳 사람들이 말하고 있는 내 집(My house)나 내 어머니(My mother)와 우리가 말하고 있는 ‘우리 집’과 ‘우리 어머니’에서 풍기는 뉘앙스는 전혀 다른 느낌을 갖게 된다. 어떤 행위나 생각과 같이 눈으로 볼 수 있는 물질의 형태를 갖추지 않고 있으면서도 ‘네 것’과 ‘내 것’을 구분할 수 있는 것으로서 ‘일’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게 된다. ‘내 일’과 ‘네 일’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는 거다. ‘일’이라면 어떤 계획이나 목적에 의해 행하는 행위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기에는 자기가 행하기 위한 행위에 대한 책임과 의무 같은 것도 생각을 해야 할 것 같다. 그러자면 또 ‘네가 할 일, 해야 할 일’ 또는 ‘내가 할 일, 해야 할 일’이라는 구분을 하게 될 수도 있겠다. 여기에서도 ‘네 일이 나의 일, 내 일이 바로 너의 일’이라는 말이 나올 법도 하다. 요즘 들어 ‘너와 나’, ‘네 것과 내 것’ 또는 ‘네 일’과 ‘내 일’이라는 것에 대하여 여러 방면으로 생각을 해보게 될 때가 더욱 많아졌다. 글자 해석의 차원에서 볼 때 각각 다른 별개의 ‘격’을 가지고 있는 ‘너와 나’는 도저히 똑같은 의미로 해석될 수가 없는 이야기이다. 네 것이면 어디까지나 네 것이고 내 일이면 하늘이 두 쪽이 나더라도 나의 일일 뿐이다. 하지만 ‘네 것을 내 것처럼’이라든가 ‘네 일을 내 일같이’라는 식의 말은 또 다른 의미가 부여 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