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닭 같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박영보 수필 1집] 촌닭 같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박영보 수필 1집] | Page 52

조기유학 열일곱 살 된 이 여자아이를 처음 만났을 때는 수줍은 듯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이곳의 사립 고등학교에 유학을 하고 있는 학생이다. 묻는 말에도 “네”나 “아뇨”가 전부였다. 이런 말 말고는 다른 말은 별로 하지도 않는 얌전하고 다소곳한 아이였다. 이런 아이가 예뻤다. 품속에 품어 주고 다독여주고도 싶었다. 며칠 지나니 다소 익숙해 져서인지 묻는 말에 대답도 곧잘 했다. 가끔씩 어리광스러운 짓을 할 때는 더욱 귀여웠다. 상냥한 웃음과 귀여운 재롱, 예쁜 짓만을 골라서 하는 것 같았다. 여자라고는 목석이나 다를 바 없는 마누라 하나뿐인 이 집안에 이렇게 귀여운 여자아이 하나가 들어오니 분위기가 확 바뀌어 지는 것 같았다. 두 사내 녀석들도 이 아이가 “오빠” 라고 부르며 이것저것 부탁을 해도 싫지가 않은 듯 잘도 들어준다. 내 딸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일주일이 지나고 이주일 삼 주일이 지났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당초에 느꼈던, 홀딱 반해 간이라도 꺼내주고 싶던 그런 모습이 아니었다. 그 아이의 진면목이 이런 것인지 본색을 드러내 놓는 것이다. 마치 나와 이 집안 식구들을 자기 입맛에만 맞도록 길을 들이려 하는 것 같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세상의 모든 사물들이나 여건들이 자기만을 위해 놓여져 있어야만 마음이 편한가 보다. 자기가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언제라도 갖추어져 있어야만 마음이 편안한가 보다.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자기 스스로 알아서 처리하려 들지도 않는다. 하다못해 “오늘은 밖이 춥지 않을까요? 두꺼운 옷을 입어야 하나요?”라며 창문만 열어보면 감 잡을 수 있는 기온까지도 남에게 물어서 답을 구하려 든다. “나는 아무리 몸 컨디션이 좋지 않아도 맛있는 음식은 얼마든지 먹을 수 있으나 맛이 없는 음식은 금방 굶어 죽게 되어도 못 먹는다”라거나 “우리 집에서는 반찬 종류가 하도 많아 젓가락이 한 번도 가지 않은 채 식사가 끝날 때가 많다”는 식의 은근한 밥투정에도 신경이 쓰인다. 자기에게만 편리하도록 따라 주기만을 바라는 것 같다. 게으르기는 배가 터지게 먹고 나서 차고(車庫) 앞 시멘트 바닥에 배를 깔고 늘어지게 잠자고 있는 강아지와 크게 다를 게 없다. 잔꾀, 잔머리를 굴리는 데는 당할 재간이 없다. 머리카락이 반백이 넘은 나 같은 중늙은이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가지고 놀려 든다. 아니 가지고 놀기 시작한 지도 꽤 된 것 같다. ‘서울깍쟁이’란 말이 있었다. 서울 사람만을 빗대어놓고 하는 말은 아닐 것이다. 약삭빠르고 기회 포착을 잘하며 이해를 따지는 머리가 유별난 사람들, 쉽게 말해 똑똑하고 순발력 있는 도시 사람들을 가리켜 하는 이야기였을 것이다. 사실 시골 사람들 보다는 서울이나 큰 도시 사람들과의 머리 돌아가는 정도에는 꽤나 많은 차이가 느껴지던 예도 없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전국이 일일 생활권이 되도록 도로교통이나 통신시설의 발달로 인하여 도시와 농촌에 큰 차이가 없어진 지금이다. 가끔 “요새는 촌 것들이 더해”라는 말들을 듣게 되는 걸 보면 도시와 농촌 간에 시간적으로나 공간적 간격이 없어진 것이 아닌가 생각도 든다. 요즘은 서울이 아닌 직할시나 광역시 정도의 도시가 아닌 군이나 읍 단위의 지역에 사는 아이들에게서도 ‘까질 대로 까져있는 고향 아이들의 모습’을 보게 된다. 나이 육십이 된 내가 열일곱 살짜리 계집아이가 가지고 노는 그런 상대로서의 존재가치로 밖에는 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당혹스러워 지기도 한다. 이 아이와 신경전을 벌여야 할 때는 내가 왜 요 모양 요 꼴이 되어 있는가를 생각해보게 된다. 눈치 싸움이라고 한다면 이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나름대로의 머리를 굴려야 한다는 것도 우스꽝스럽다. ‘이 아이가 원하는 대로 해주면 될 것 아냐’로 마음을 접고 가다듬을 수만 있다면 신경을 꺼도 될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아이의 끝이 없는 머리 굴리기에 따라 주는 일에도 내가 감당을 할 수 있는 한계를 훨씬 넘어선다. 순수하면서도 당당하게 청해오는 정당한 요구라면 이를 들어주기 위한 나름대로의 노력을 할 수도 있다. 문제는 이 아이가 잔머리를 굴려가며 나를 가지고 놀려 하거나 자기 입맛대로 길을 들이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을 묘하게도 이용하려는, 이용할 줄도 알고 있는 이 아이에게 경계심 같은 것이 생기기도 한다는 것이다. 우리 집에는 오래 전부터 이어져 온 우리 나름대로의 생활방식이나 라이프스타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