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닭 같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박영보 수필 1집] 촌닭 같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박영보 수필 1집] | Page 49

손님들이 오면 배는 먹을 수 있을 만큼 익었으니 직접 나무에서 따먹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하자던 아내의 소박한 기대는 잠시나마 가졌던 꿈같은 낭만이 되었다. 나무에서 직접 따서 손으로 먼지를 문질러 닦으며 덥석 베어 물어 과즙이 흘러내리는 모습은 아름다울 게라는 상상은 한갓 꿈이 되고 말았다. 나는 정말 이런 모습을 보기를 원했었고 아름다운 잔치가 될 것이라는 상상을 했었다. 그러나 그들은 봉지에 따 담기에 바빠서 먹어 보거나 무공해 웰빙 got 과일의 맛을 볼 시간도 없었나 보다. 그렇게나 소담스럽고 풍요가 온 집안에 깔린 것 같던 모습이 불과 2-30 여분 만에 수마가 할퀴고 간 듯 한 황량한 모습으로 바뀐 뒷마당을 바라보고 있자니 어이가 없다. 아직도 풋내와 비린내가 날 정도로 익지도 않고 자라지도 않은 대추나무에 무리들이 몰려들었다. “추석 무렵이면 아주 맛있는 풋대추가 될 것이니 그때 다시 한 번 모여야겠다”는 식의 간접적인 제재나 만류(?)의 방법으로는 먹혀 들지가 않았다. 남자 여자 가릴 것 없이 마구잡이 식으로 덮치며 할퀴는 손길을 막을 아무런 방도가 없었다. 그저 답답하고 안타까우며 그 손길들이 야속하기만 했다. “익으면 햇볕에 말려 친정어머니께 한 봉지 싸서 보내야지”를 꿈꾸던 아 내 보기가 민망스럽기도 하다. “어쩌면 세상에 이럴 수가……”. “다른 사람들이 자기네들 집에 가서 이 정도로 아수라장을 만들어도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를 거듭하는 아내가 측은하고 안쓰럽기도 했다. 한 그루의 대추나무에 10 여명 이상이 몰려들어 경쟁을 하듯 각자가 플라스틱 백에 가득하게 따 담아가서 그 많은 것을 무엇에 쓰려는 것일까 싶기도 했다. 마치 펄 벅의 대지에 나오는 장면 중에서 메뚜기 떼가 휩쓸고 지나간 후 폐허가 돼버린 논밭을 바라다보며 허탈해 하는 광경을 보고 있는 듯도 싶기도 했다. 배나무, 자두나무, 무화과나무, 아보카도나무 그리고 대추나무를 가리지 않고 무지막지하게 할퀴고 간 뒷마당의 모습이 흉물스럽게 남아 있는 뒤뜰의 모습에 정이 떨어져 선뜻 뒷마당에 나가 보기가도 싫어지기도 했다. 미국인 이웃이 우리 집에 들를 때나 멕시칸 가정원사들에게 과일을 따 가라면 많아야 5-6 개 정도를 따가고 더 가져가도 된다면 “More than Enough” 라며 사양을 하며 감사의 말을 반복하는 그들의 행동과 너무나 차이가 나는 우리들의 모습들을 비교 해보니 씁쓸하기도 했다. 집주인의 양해를 구하지도 않고 완전히 자라지도 않은 5 년생 대추나무에 벌떼처럼 몰려들어 서로 경쟁을 하듯 작살을 내고 말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것일까. 묵묵히 바라다보고 있자니 지난날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어릴 적 한국에서 길가의 담 너머로 뻗어 나온 남의 집 과일 나뭇가지에 아직 완전히 자라지도 않고 익지도 않은 열매를 따서 한입 베어 물다 내던지던 모습. 참새가 있으면 어떤 이유나 목적도 없이 돌을 던지던 습성들을 보아온 나로서 새삼스러울 것은 없지만 해도 너무 한다 싶다. 우리 식구들은 가지마다 매달린 배가 노랗게 익어 있어도 이것을 따기 위해 선뜻 손을 내밀지도 못하고 있었다. 어쩌다 새들이 쪼아 먹다 떨어진 것만을 주워 먹는 게 고작이었다. 알이 굵고 모양이 고르며 상처 없이 좋은 열매들은 나뭇가지에 남겨두는 것이었다. 방문할 손님들과 이웃 그리고 교우들에게 나누어 주기 위해 아껴온 것이었다. 매일 아침이나 낮, 저녁을 가리지 않고 나가서 바라다보는 즐거움을 불과 몇 분 사이에 약탈당해 버린 허탈감을 무엇으로 메울 수가 있을까 싶기도 했다. 수영장이나 테니스 코트를 만들자던 아내가 이번엔 과일나무는 모두 잘라버리고 야채와 꽃이나 심자 고도 한다. “꽃도 잘라가고 야채도 뽑아 갔잖아?” 라고 하니 까르르 웃으며 “못 말려” 라는 말 한마디로 마무리 해주는 아내가 한편으로는 고맙기도 하다. 뒷마당, 소박하고 아름다운 마음으로 풀 포기 하나, 꽃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이들과 대화하며 세상의 잡다한 생각들에서 벗어날 수 있는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흔적이 마음속에 오랜 상처로 남아 있을 것만 같다. 이런 나의 공간을 송두리째 짓밟고 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