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닭 같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박영보 수필 1집] 촌닭 같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박영보 수필 1집] | Page 25

모습의 생활을 해온 게 하루 이틀이 아니니 살기 위해 먹는 것인지 먹기 위해 사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생길 법도 하지 않은가. 그런데도 식욕이 떨어져 본적은 단 한 번도 없었던 걸 보면 내 팔자는 애초부터 그렇게 타고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저녁상은 그런대로 봐줄만하다. 그렇다고 푸짐하다는 것은 아니다. 아내와 함께하는 저녁상이니 가끔은 보글보글 끓어오른 찌개도 있다. 저녁상이라고는 했지만 커피테이블 위에 깔아놓은 신문지 위에 늘어놓으면 이것이 밥상이 되는 것이다. 커피테이블은 우리가 패밀리 룸으로 쓰고 있는 방에 있다. 부엌에서 이곳까지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대부분의 저녁식사는 이곳에서 하게 된다. 한국 TV 방송이 시작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아내가 즐겨보는 연속극을 놓치지 않으려면 이 수밖에 없다. 밥그릇이나 반찬그릇 같은 것은 아내와 두어 차례 번갈아 가며 여기까지 옮겨오면 된다. 이런 일쯤은 번거롭게 여겨지지도 않는가 보다. 먹는 것이야 찬밥이어도 좋고 냉장고를 몇 차례씩 드나들었던 남은 반찬 몇 가지면 족한데 이것도 우리에게는 진수성찬이다. 밥맛은 어찌도 그리 좋은지. 아내나 나는 삼십 여 년을 함께 살아오며 이제까지 밥맛이 없어 어려움을 겪었던 일은 없었던 것 같다. 몹시 피곤하거나 몸이 아플 때에도 식욕이 떨어져 본적이 없다. 찬밥에 쉬어터진 김치 몇 쪼가리만 있어도 밥맛은 꿀맛이다. 아내에게 “밖에 나가서 고급요리를 먹게 되거나 궁중요리를 먹게 된들 이렇게 맛있게 먹을 수 있을까” 라면 “맞아”라며 씽긋 웃고 “남들은 어떻게 식사를 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그들도 이렇게 맛있게 먹을 수 있을까”라며 까르르 웃는다. 온종일 집안에서 혼자 업무에 관련된 일을 한답시고 꼼지락거리고 있다가 아내 한 사람이 들어오면 집안의 분위기는 달라진다. 아침부터 서로 떨어져 있다가 다시 만나게 된다는 기다림으로 비워져 있던 공간을 온기로 채워주는 순간이기도 하다. 활력이 넘치는 것 같기도 하고. 하루 동안 있었던 일들이나 주변사람들에 대한 소식 또는 생활에 관련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기도 하다. 상차림은 조촐하지만 입맛만은 진수성찬이니 고관대작이 부러우랴 백만장자가 부러우랴. 나는 이제 이런 일에 익숙해져 있는가 보다. 이러한 모습의 내가 청승스럽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 부엌에 혼자 서서 밥을 먹고 있는 이 남자는 이런 공간 안에서 천하 일미의 참 맛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아내가 퇴근하여 집에 도착될 시간에 맞추어 전기밥솥과 찌개 냄비가 올려져 있는 레인지의 스위치를 켜놓고 나면 창문을 통하여 드라이브 웨이를 힐끔거릴 일만 남아 있다. 현관문의 잠금 쇠도 열어놔야 되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