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닭 같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박영보 수필 1집] 촌닭 같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박영보 수필 1집] | Page 21

꽃은 누르스름한 색깔의 조그만 원추꽃차례로 피는데 볼품은 없다. 3 월에 꽃이 필 때는 낙엽 지는 이파리들과 꽃잎으로 온 마당을 어지럽히지만 꽃이 진 다음에 돋아나는 새 이파리는 훨씬 싱그럽고 아름답다. 나무의 본줄기와 뻗어난 가지의 방향에 맞추어 둘레에는 적갈색 벽돌을 쌓았다. 사람이 앉을 수 있도록 의자 높이로 단(壇)을 쌓아 만들어 두었더니 수십 개의 의자를 놔둔 것처럼 편리하게 사용할 수가 있게 되었다. 붙박이 바비큐 그릴도 설치해 놓고 나니 웬만한 크기의 모임을 갖는데도 안성맞춤이다. 아보카도나무의 넓은 그늘을 아래에서는 이따금씩 찾아주는 문우들과 차를 마시며 담소를 하는데도 제격이고 이삼십 명 정도의 교구예배 장소로도 부족함이 없다. 어찌 그뿐이랴. 일 년 내내 공급해주는 열매는 우리 가족과 이웃의 입맛을 돋우어주기도 하고 영양을 높여주는 데에도 한몫을 톡톡히 해주고 있다. 누가 손님을 초대하거나 파티가 있을 때면 캘리포니아 롤을 만들겠다며 가져가는 이웃들도 여럿이다. 실내 온도에서 4~5 일을 놔두면 먹기에 알맞게 보드라워진다. 아이들은 라면을 끓일 때도 저며서 넣어먹기도 하는데 제법 먹을 만하다. 샌드위치나 샐러드에도 어울리고 김밥을 싸는데도 제격인데 최근에 이를 잘게 썰어 부침가루를 섞어 전을 붙여 봤더니 이 맛 또한 새롭다. 새로운 메뉴를 개발한 셈이다. 아보카도 반쪽에 레몬즙을 짜 넣고 버무려 스푼으로 떠먹으면 아침식사로 대신하기에도 충분하다. 요즈음에는 과카몰리(Gucamole)를 만드는 재미도 쏠쏠하다. 작년에 열린 열매들이 완전히 익어 나뭇가지에서 일부러 따지 않아도 아침에 일어나면 여러 개가 땅에 떨어져 있다. 금년 봄에 열린 새 열매와 크기는 비슷하지만 더 울퉁불퉁하고 열매의 끝 쪽은 마치 딱지가 진 것처럼 검고 딱딱해져 있다. 꼭지가 돌아 땅에 떨어지면 그 충격에 그 부분이 빠져나가거나 뭉개지기도 한다. 보기에는 좀 그렇지만 맛은 훨씬 좋다. 갈라보면 육질부분의 색깔이 금년에 열린 것보다 더 노랗고 차지며 맛은 훨씬 고소하다. 누구에게 선물로 줄 때는 상처가 없고 보기에도 좋은 것을 골라서 따주지만 우리는 이 떨어진 열매만 먹게 된다. 실은 더욱 실속이 있지만 선물을 하기엔 볼품이 없기 때문이다. 이를 알고 있는 몇몇 이웃들은 이 떨어진 것을 좋아하는 분들도 있다. 양파, 할로페냐, 실란트로, 토마토에 약간씩의 후추와 소금을 넣고 레몬즙을 섞어 으깨놓으면 훌륭한 먹거리가 된다. 칩 종류를 찍어 먹거나 빵에 잼 대신에 발라먹어도 좋다. 교우들이나 이웃과 나누는 재미도 빼놓을 수가 없다. 아내는 요즈음 이사를 가자는 말을 자주 한다. 이 집에서 살만큼 살았으니 이제 조용하고 아늑한 데로 가보자는 것이다. 살아있는 동안에 자기도 새 집에서 한번 살아보고 싶단다. 아이들도 다 성장하여 나가고 없으니 두 부부가 이렇게 큰집에서 살 필요가 있겠느냐며 바닷가 같은 조용한 곳에 가서 조그맣고 깔끔한 타운 하우스 같은 데서 살아보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 집을 살 때처럼 이것도 아내의 말을 따랐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후회를 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루라도 손에 흙을 묻혀야만 하는 내가 무슨 재미로 살 수 있다는 말인가. 이 아보카도 나무 하나만으로도 내가 이 집을 떠나지 않으려는데 대한 충분한 이유로 삼기도 하고 아내의 주장에 맞설 수 있는 구실로 삼고 있는 중이다. “내가 죽거든 뒷마당에 묻어줘”라고 까지 하며 굽히려 들지 않았더니 약간은 조용해지기는 했지만 완전히 포기를 한 것인지는 두고 봐야 할 일이다. 내가 뒷마당에서 자라고 있는 이 아보카도 나무나 풀과 나무들에 집착을 하고 있는 것은 우리에게 먹거리를 제공해 주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러고 보니 뒷마당에 있은 나무들 중에는 관상수도 있지만 대부분이 유실수 들이다. 대추며 감, 배, 사과, 자두, 포도나무도 있고 석류나 무화과나무도 있다. 상추, 무, 부추, 아욱, 근대, 고추, 피망, 파 나 토마토 같은 야채들도 모두가 먹을 거리가 아닌가. 그렇지만 내가 손에 흙을 묻히고 땡볕에서 땀을 흘리는 이유는 단지 먹거리를 건져내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그들에게는 거짓이 없다. 욕심도 없다. 모함을 하거나 책임을 회피하려 들지도 않는다. 자연의 법칙, 하나님의 법칙에만 순응을 하고 있을 뿐이다. 주는 대로, 부여된 환경이나 여건에 따르기만 할 뿐이다. 나는 이들과 대화를 나눈다. 정과 사랑 같은 것도 나눈다. 이들로부터 자연의 법칙, 삶의 방식도 배우게 된다. 작으나마 이들에게서 나눔 받은 작은 거둠을 다정한 이웃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기쁨도 갖게 된다. 아보카도. 언제부터였는지 나에게 있어서 이 나무는 마당 한쪽에 그냥 서있는 나무가 아니다. 마치 무슨 피붙이나 되는 것처럼 하루에도 몇 번씩 바라다보고 느끼게 되며 생각을 하게 되는 그러한 존재가 되어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