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닭 같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박영보 수필 1집] 촌닭 같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박영보 수필 1집] | Page 153

세상이 하도 급변하다 보니 전업주부(專業主婦)가 아닌 전업주부(專業主夫)라는 말도 자연스럽게 들리는 시대가 되었지만 공처가(功妻家)라는 말은 아직 생경하여 고개가 갸우뚱해 진다. 하지만 호칭이야 어떠하든 이미 우리 주변에는 아내를 무서워하는 공처가 보다 아내를 사랑하는 공처가가 더 많은 세태가 되었으니 그 어의(語義) 풀이가 무슨 소용이겠는가. 미국 생활에서 재택(在宅) 근무를 하는 남편과 직장근무를 하는 아내 사이의 역할 분담은 비단 이 작가만의 경우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면 안 된다’는 고루한 인습에 젖어온 ‘충청도 사내’의 의식을 이렇게 멋지게 깨뜨리고 스스로 공처가(功妻家)의 원조(元祖)로 자임할 수 있다는 것은 이 작가만이 지닌 특출한 기질이라 할 것이다. “십 년 가까이 재택근무를 하고 있는 나는 동부와 서부 사이의 세 시간이라는 시간차로 인하여 아내보다 느긋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새벽바람을 쏘이며 출근하는 아내에게 따끈한 한 잔의 커피나 생강차를 끓여주는 일, 입맛에 맞는 저녁상을 마련하고 싶은 마음, 맛있게 먹어주었으면 하는 바람 속에 부엌에 들어설 때는 언제나 즐겁다. / 설레는 마음으로 아내를 기다리는 남편의 역할도 기분 나쁜 일은 아니다.” 이렇듯 진정한 ‘아내사랑 법’을 터득한 작가는 여기에 곁들여 갖가지 요리 솜씨도 자랑하고 있다. ‘아버지는 아들의 교과서’라 했던가. 어느새 두 아들도 아버지를 닮아 간단한 요리는 척척 자발적으로 만들어 내오고 있다는 데서 이 가정의 정감 어린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 우리나라에 있었으면 아마 다복상이나 모범가장상쯤은 능히 탈수도 있을 것 같다. 문학은 감동의 소산이라고 했듯이, 이 작가의 글 속에는 무한한 감동의 샘이 마련되어 있다. 어느 대목을 접해도 촉촉이 그 감동의 샘에 젖어들 수 있어서 흐뭇하다. ‘보고 싶은 아이’는 작가가 5,6 세경에 겪었던 가난의 체험담이다. 우리나라가 일제치하로부터 해방된 지 3 년쯤 지났을 무렵, 전국적으로 흉년이 들어 온 국민이 초근목피로 연명하던 때의 이야기다. 시골에서 셋방살이를 할 때 헛간에서 키우던 병아리 한 마리를 자기또래의 아이로 의인화(擬人化)시켜 회상의 날개를 펼치고 있다. 작가 자신은 일일이 부모의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못해 피동적으로만 살아가는데 반해, 그 병아리는 의연하게 자기 힘과 자기 판단만으로 생존하고 있었으니 얼마나 경이(驚異)로운 일이던가. “나는 그 아이의 자유와 생명력과 의지에 대하여 선망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두 눈을 가지고도 세상을 바로 보지 못했으며 뚫린 귀로도 바로 듣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배고픔을 통하여 한 톨 곡식의 가치를 알게 해주고 어떤 행위에 대한 책임과 판단력을 일깨워 준 부모님에 대해서도 뒤늦게 이해할 수 있었으니…….” 이렇게 술회하고 있는 작가는 만일 자신이 그 닭만큼 자생능력을 가지고 적극적인 삶을 살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면서 스스로를 뉘우치고 있다. 태어나서 불과 몇 달 만에 자력으로 살아가는 그 닭에 비하면 자신은 아직도 철부지의 티를 벗지 못하고 있다는 이 자격지심(自激之心)을, 어찌 작가만의 소회라 하겠는가. 요즈음 ‘짐승만도 못한 인간’이 횡행하고 있는 세태 속에서 이처럼 한 미물로부터 삶의 지혜와 자립정신을 배우고자 하는 이 작가의 정신세계가 얼마나 넓고 그윽한지 모르겠다. 마치 한 편의 대하소설을 읽은 것만큼이나 큰 감동이 밀려오는 좋은 작품이다. ‘왕따는 외롭지 않았다’는 작가자신의 가정비화를 고백한 작품이다. 아들 형제와 함께 4 인 가족으로 살아가는 작가 부부는 그 누구보다 단란한 가정을 꾸미고 살아가는 것 같다. 간혹 자신을 제쳐놓고 3 모자가 쑥덕공론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