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닭 같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박영보 수필 1집] 촌닭 같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박영보 수필 1집] | Page 149

그녀의 기차고 히트를 칠만한 어록(?) 하나를 떠올려본다. 나는 그 한마디를 가슴속에 간직해두고 있다. 어찌 보면 그녀의 이 한마디가 지금의 고통스러운 자기 자신의 팔자를 스스로 선택하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말 못할 고통과 아픔을 자초하게 된 결정적인 실수였을지도 모를 일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녀의 이 한마디 실수가 자신의 팔자를 이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으니 말이다. “저는 반찬 같은 거 아무것도 만들 줄 몰라요.” 이 기상천외한 한마디. 이게 “나한테 시집올 생각 같은 걸 해본 적이 있나요?”라는 일종의 프러포즈에 대한 그녀의 대답이었다. 이럴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의 어떤 점을 보시고......”라던가 “부족한 점이 많다.”는 등의 말로 질질 끌어가며 내숭을 떠는 경우에 비하면 이 한마디는 파격적이었다. 얼핏 뚱딴지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겠지만. 그녀는 나의 결혼제의에 대하여 반찬걱정부터 하는 사람이었다. 꿈보다 해몽이 좋은 격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아마 이때부터 나라는 사람에게 무엇이든 베풀겠다는 마음과 희생 같은 것을 각오한 여자였던 것처럼 느껴졌다고나 할까. 이 말을 들은 가족들은 모두가 자지러졌었다. 구혼에 대한 기발한 수락의 신호였다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녀에게는 고통과 시련의 시작이기도 했었겠지만 나에게는 행운이었고 복이 무더기로 쏟아져 쌓이는 팔자로 진입되는 순간이기도 했던 것이었다. 이런 생각을 해보니 그녀에 대한 미안한 마음은 이만 저만이 아니다. 그녀의 한마디 실수(?)로 인한 결정에 대하여 후회 같은 것마저 포기를 해버린 덕에 나는 오늘 같은 복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으니 팔자치고는 상팔자가 아닌가. 그녀의 말마따나 정말 반찬솜씨는 엉망이었다. 그 말도 내숭은 아니었고 진실이었다는 것은 결혼이라는 것을 한 그 시간부터 알 수가 있었다. 삼십 년이 지난 지금은 그런대로 먹을 만해진 셈이다. 이렇게 말은 하고 있지만 사실 그 동안에도 이 사람이 차려준 밥상은 나에게는 진수성찬이었다. 식탁을 제쳐놓고 커피테이블 위에 신문지를 깔고 차려놓은 찬밥과 전날 먹다 남은 밑반찬이 전부일 때도 밥맛이 없다거나 입맛이 돌지 않는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무엇이든지 주는 대로 군소리 없이 잘 먹고 식욕이 왕성한 나 같은 사람과의 궁합도 그런대로 괜찮은 편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나는 그녀의 어수룩함을 사랑한다. 주변에서 수도 없는 거짓에 속고 또 속으면서도 까르르 웃음으로 지나쳐 버리는 백치 같은 순진함을 가지고 있는 여자다. 자기 자신에겐 지독한 자린 고비이면서도 남을 위해서는 엄청난 큰손을 가지고 있다. 큰손이라고 해서 막무가내로 퍼붓는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옳다고 판단되고 해야 할 일이라고 결정을 한 다음에는 머뭇거리는 성격이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욕심이라고는 부릴 줄도 모르고 얕은꾀로 잔머리를 굴릴 줄도 모르는 꽉 막힌 답답함을 또한 사랑한다. 욕심이라는 게 있다면 자기가 원하는 만큼의 결과를 거두기 위해 그만큼의 피와 땀을 아끼지 않고 쏟으려는 자세일 것이다. 작은 기쁨에도 감동하고 작은 슬픔에도 훌쩍거리며 작은 아픔도 함께 나누려는 사람이기도 하다. 때로는 연하고, 때로는 진하기도 한 그녀의 여린 모습을 바라다보고 있으면 엉망진창인 나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된다. 언제나 수수한 차림새, 자기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없는 사람일수록 겉치레에 치중하는 거라며 초라한 겉모습을 구태여 감추려 들지도 않는 그녀의 굳은 신념을 나는 사랑한다. 잘난 척 뻐기지도 않고 모자란다고 자학을 하며 움츠리지도 않는 그녀를 나는 사랑한다. 행복이라는 것이 높은 데에나 멀리에만 있는 게 아니라 자기의 마음속에서, 손바닥 안에서, 아니면 가까운 주변에서도 얼마든지 건져낼 수 있는 것으로 믿고 있는 그녀이기도 하다. 어느 누가 이러한 사람을 사랑하지 않고 배겨 낼 수가 있을까. 때를 가리지 않고 나를 자지러지게 해주는 그녀의 이런 촌스러움이 나에게는 가장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부분이기도 하다. 그녀의 이런 모습을 통하여 나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며 추스를 수도 있게 해주기도 한다. 사실 나라는 사람도 답답하고 앞뒤가 꽉 막혀있기는 다를 바가 없는걸 보면 궁합치고는 제법 괜찮은 궁합이 아닌가. 오염의 정도에 차이가 있는 것 말고는 눈높이에도 큰 차이가 없으니. 어쩌랴. 누가 이러한 나를 팔불출이라고 부른다 해도 속이 상할 것 같지도 않다. 그냥 좋기만 한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