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닭 같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박영보 수필 1집] 촌닭 같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박영보 수필 1집] | Page 148

때문이라고 여길 수도 있겠지만. 어떤 때는 철부지 같고 어떤 때는 속에 백 년쯤 묵은 구렁이가 똬리를 틀고 들어앉아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구렁이 같다는 말은 상황에 따라 입과 귀를 막고 속으로만 새길 줄도 안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면서도 일상생활에서 한마디의 말을 할 때도 조심성 있게 미리 생각을 하는 성격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러다 보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하기도 하여 가끔 귀여운 실수를 할 때도 있다. 시집 온지 며칠 되지도 않았을 때의 일이다. 아버님이 지금도 살아 계시다면 그때의 일을 생각하시며 파안대소를 하실 게다. 아버님이 출근하실 때 인사를 한답시고 현관 밖에까지 따라 나와 한다는 말이 “아버님, 아버님 모가지에 뭐가 붙어있네요.” 하며 천연덕스럽게 목 부분의 옷깃에 붙어있는 실밥 같은 것을 떼어드리던 이야기이다. 시아버지에게 ‘아버님의 모가지’라니. 그러니 뻔뻔스럽다거나 당찬 여자랄 수밖에. 평소에 말씀이 없으시고 잘 웃지도 않던 양반이 입을 크게 벌리며 퍽하고 웃게 해드리는 순간이기도 했었다. 이 일은 삼십 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도 집안 식구들 간에 화제거리로 전해져 오고 있다. 나의 장난기로 엉뚱한 소리를 하거나 웃기기 위해 무슨 꾸며낸 말을 지껄일 때도 이것을 진담으로 알고 “어머나, 그래요?”라며 정색을 하는 모습도 재미가 있었는데 요즈음에 와서는 “에이, 거짓말”이라거나 “웃기고 있네.”라며 어느 정도 감을 잡기도 한다. 이제야 세상의 눈을 뜨기 시작을 한 것인지 아니면 뒤늦게 오염이 돼가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녀가 이 정도의 세상물정에 눈을 뜨게 되기까지 에 걸린 시간은 자그마치 삼십 년하고도 몇 해가 더 지났다. 이 사람은 나 때문에 “오염이 됐다”고 한다. 그렇다면 내가 바로 이 사람을 세상의 때 국물에 오염시킨 장본인이 되는 셈이다. 공장의 폐수나 산업 쓰레기로 하루아침에 산과 들, 강과 바다를 오염시키고 있는 것과 비교해보면 사람 하나 오염시키는데 걸린 시간은 꽤나 오래 걸린 것 같다. 말로는 이 사람에게 답답하고 앞뒤가 꽉 막힌 여자라고 표현을 하면서도 나는 그녀의 이런 점을 좋아하고 있는가 보다. 그녀에게 이런 꽉 막힘과 답답함이 없었더라면 나의 삶은 얼마나 메마르고 고된 시간이 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기도 한다. 서로가 전혀 모르는 남과 남이 만나 하나의 가정을 이룬다는 것에 대하여 여러 각도의 생각을 해보곤 한다. 주위에는 겉으로나마 지체 있고 풍족한 삶을 살고 있다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 사람들을 바라다보고 있을라치면 그녀가 떠오르곤 한다. 이 사람이 나 같은 사람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지금 어떤 모습의 삶을 살고 있을까. 지금보다는 훨씬 멋지고 행복하며 보다 값진 삶을 누릴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다시 말해서 내가 아니었더라면 그녀의 팔자가 백팔십도 달라질 수도 있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을 게다. 한없이 높아 질 수도 있었을 그녀의 눈높이가 나로 인하여 제일 낮은 자리에만 멈추어 있게 됐다는데 대한 일말의 양심선언 같은 것일까. 열심히, 너무도 열심히 살아가려는 일념만으로 몸과 마음을 사리지 않는 그녀의 모습이 처절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어느 부모인들 크게 다를 바가 있을까 만 아이들을 위해 내던지는 자기희생은 눈물겹기도 했었다. 무조건 적이었다. 아이들을 위해 십 수 년 동안 밤 근무를 해온 사람이기도 하다. 나라는 어쭙잖은 사람으로 인하여 겪어야 했던 아픔과 어려움들을 잘도 견뎌주었다. 나의 모자람, 무능으로 인한 모든 짐까지 떠맡기까지 해가며. 그러면서도 나의 마음에 상처를 준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꼴 같지도 않은 한국적 남자의 자존심 같은 데에도 단 한 점의 흠집을 내준 일도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단 한 번도 감사의 뜻을 나타내 본적이 없었다. 가슴 속에는 항상 그런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으면서도 말이다. 몇 마디 말만으로는 마음에 있는 모든 것을 전달하거나 그녀에게 있었던 고통과 아픔을 덜어줄 수가 없어서였을까. 그녀가 이제까지 쏟은 정성과 희생이 어떤 결과나 대가를 바란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날이 갈수록 내가 그녀에게 지고 있는 빚의 무게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무거워지고 있는 것 같다. 마음속으로는 ‘고마워’라는 말을 되풀이하고 있으면서도 무엇을 어떻게 해주는 것이 그녀를 위한 것인지도 파악을 하지 못하고 있으니 그녀도 불쌍한 여자임에는 틀림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