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닭 같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박영보 수필 1집] 촌닭 같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박영보 수필 1집] | Page 144

묽은 고추장이나 케첩 같이 고운 색깔을 내고 있어 보기에도 좋아 보였다. 이제까지 봐오던 것처럼 굵은 고춧가루와 파, 마늘이나 파 같은 양념들이 눈에 띄지 않고 마치 샐러드드레싱처럼 고왔다. 양념장이나 다대기라는 말 대신에 소스라고 이름을 붙이는 게 더 격에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혼자서 피식 웃는다. 병에 담아 냉장고 속에 넣어 두었다. 숙성을 시키기 위해서였다. 두어 시간쯤 후에 청경채에 숙성된 소스를 섞어 버무리니 마치 샐러드용 야채에 드레싱을 섞어놓은 것 같아 보기에도 나쁘지가 않다. 입에 한입 쏘옥 넣어보니 제법이다. 이거다 싶었다. 조상님들께는 죄송한 일이지만 할머님과 어머님께서 만들어 주시던 그것과 또 다른 맛이다. 조상님들의 그 손끝 맛보다 더 좋다는 뜻으로 해석을 해도 좋을지 모르겠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무 하나와 배추 한 포기가 있다. 깨끗이 씻고 적당한 크기로 잘라 소금에 절인 후 같은 소스로 버무리니 훌륭한 김치 맛이다. 김치를 맛있게 담는 많은 한국 분들의 솜씨에 버금이 간다거나 더 좋은 김치라고야 말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우리 몇 식구의 입맛을 충족시키기에는 모자람이 없을 정도는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얏 호~’ 소리라도 지르고 싶다. 아내와 아이들이 빨리 돌아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보며 전기밥솥의 스위치를 누른다. 돌아온 아내는 “정말 맛이 괜찮다.”란다. 사먹는 것보다 훨씬 좋다며 앞으로는 집에서 담아 먹잔다. 마켓 김치는 아무리 싼 세일가격이라도 최소한 일 갤런 짜리 한 병이 십 불 이상인데 삼사불만 들이면 인공색소나 화학조미료를 쓰지 않고도 보다 신선하고 맛있는 김치를 먹을 수 있겠다며 호들갑이다. “그럼 그 김치는 누가 담지?”라고 물으니 “자기가~”라며 히히히 라는 게 그녀의 대답이다. 요새 나는 야채를 다듬고 씻는 일과 소스 만들기, 아내는 절이고 버무려 용기에 담는 일로 업무를 분담하게 되니 김치 한 병 만들어내는 것은 이제 일도 아닌 것 같다. 신혼중인 아들 집을 방문할 때는 김치 한 병 담아다 주겠다는 게 아내의 계획이기도 하다. 김치 하나 담는 법을 터득하는데 걸린 시간이 자그마치 삼십 여 년. 삶을 살아가면서 터득해야 할 일이 어찌 김치 담는 법 하나뿐이랴. 그 많은 일들을 하나하나 터득해 나가자면 몇 번씩의 삼십 여 년을 더 보내야만 할 것인가를 생각해보면 아득하게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