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닭 같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박영보 수필 1집] 촌닭 같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박영보 수필 1집] | Page 141

원조 공처가 (元祖 功妻家) 얼마 전 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가 신문에 소개된 일이 있었다. <전업 主夫>(主婦가 아닌)라는 제 하의 글이었다. 내용인즉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창업 준비를 하던 중 IMF 가 터져 집안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 40 대 중반의 남자 이야기였다. 복직을 하는 일도 불가능했었나 보다. 아내는 풀 타임으로 일을 하고 있어 크고 작은 집안일은 자기 자신이 도맡아 하게 됐다는 내용이었다. 이른 새벽부터 일어나 밥을 짓고 반찬을 준비하는 일로부터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는 일 등 부산한 그의 하루 생활을 소개하고 있다. 자기 자신의 식사도 스스로 처리해야 함은 물론 설거지, 빨래, 청소 등 이제까지 아내가 도맡아 하던 집안일들을 스스로 해 나가고 있는 모습들이 그려져 있었다. 이렇게 부부의 역할이 서로 뒤바꿔 진 것이 꽤 오래된 일이라고 한다. 직장에서 피곤한 몸으로 밤늦게 돌아온 아내를 위해 남편으로서 해줄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있는 남편의 모습. 한국적인 가부장적 문화 속에서 부엌의 개수대 앞에 서서 물에 손을 적시고 있는 한국 남성의 모습을 상상해 보게 된다. 처음에는 ‘정상적인 생활로의 복귀’를 기대했었다고도 한다. 그가 말하고 있는 그 ‘정상적인 생활로의 복귀’란 ‘고루한 가장(家長) 의식에 따른 것 같기도 한데 이젠 그런 의식에서도 벗어났다고 한다. “남녀의 고정된 역할이란 따로 있는 게 아니고 가족 구성원 각자가 그때그때의 여건에 따라 적합한 방식으로 책임을 지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렇게 지내다 보니 집안에서의 살림이라는 것도 상당한 전문성을 요구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상대방에 대한 배려를 하는 것도 배우게 되었다고도 한다. 여자들 즉 가정의 아내들에 대한 더 많은 이해를 하게 됐다는 의미로 들리기도 한다. 나는 이분에 대한 글을 읽으며 현재의 내 모습을 되돌아본다. 그분이 현재의 이 모습으로 역할이 바꿔서 살아온 것은 8 년에 접어들었다고 한다. 한국의 유별난 남성적 정체성을 극복하는데도 3 년이나 걸렸다고 말하는 걸 보면 처음에는 피치 못해 그 역할을 억지로 담당해 온 것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이런 일을 감당해야 했다는 듯 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보면 환경이나 여건에 상관없이, 또는 누구의 부탁에 의하지 않고 스스로 나서고 있는 나와는 다른 점이기도 하다. 지금의 내 역할, 이를테면 부엌에서 손에 물을 묻히는 정도의 일은 내가 결혼을 한 그날부터 시작되었다. 아니, 나의 부엌 출입은 결혼은 하기 훨씬 이전부터도 계속되어 왔다. 중고등 학교 때나 대학을 다닐 때도 그랬었고 직장을 다닐 때도 마찬가지였었다. 그러니 나의 이러한 역할을 해온 것이 4-50 년은 족히 되는 셈이다. 이는 역할분담 즉 남자로서의 할 일이나 여자로서의 할 일에 대한 구분 같은 개념에서가 아니었다. 그러니까 나에게 있어서는 이러한 역할의 분담이라는 말에 해당되는 것 같지가 않다. 구태여 분담이란 말을 써야 한대도 그 분담을 하게 된 동기나 이유 또는 특별한 환경변화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는 말이 되겠다. 당연시했었다 고나 할까. 그냥 ‘네 일’, ‘내일’을 가리지 않고 각자가 어떤 상황에서 필요를 느끼면 머뭇거림 없이 나서고 있을 따름이다. 집안의 내력이었을까. 이미 세상을 떠나신 아버님이나 큰 형님도 그랬었고 70 이 넘은 두 형님과 하와이에 있는 오십 대 후반의 남동생도 부엌일 같은 데는 머뭇거림이 없다. 나에게는 삼십 대 초반과 이십 대 후반의 두 아들이 있다. 이들은 전문직에 종사하고 있으면서도 이따금씩 자기 나름의 ‘레서피’로 바비큐를 굽고 자기가 만든 특유의 소스를 내놓기도 한다. 작은 녀석은 가끔 직장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요리학원에 들려 배워온 메뉴의 시범을 보이기도 한다. 우리 집안 남자들의 음식 솜씨는 내세울 만큼 뛰어난 것은 없지만 ‘먹을 만하다’는 정도의 평가를 받고 있다. 아내들이 만들어 낸 음식에 식상할 때는 팔을 걷어 부치고 부엌에 들어서는 게 이 집안 남자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아내는 틈만 있으면 TV 의 음식채널을 노트에 메모까지 해가며 열심히 시청을 해 온 것이 몇 년째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그 레서피로 만들어낸 음식을 먹어본 적은 없다. 아내에게 “만들지도 않을 걸 뭣 하러 그렇게 적기까지 하면서 열심인지 모르겠다”면 “언젠가는 한번쯤 해 볼 것”이란다. 그 언제쯤이라는 것이 얼마나 길 것인지는 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