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닭 같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박영보 수필 1집] 촌닭 같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박영보 수필 1집] | Page 14

먹이다툼 “세상에, 너 같은 것들을 인간이라고 부르는 거냐. 인간들, 너뿐만 아니라 이 지구상 수억의 인간들이 모두가 다 너 같은 철면피냐”라며 비웃고 있는 것만 같다. 어쩌면 나 한 사람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아니 지구상의 온 인류가 그에게로부터 업신여김을 당하고 있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생각을 해 보면 그에게 조금은 미안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창피하기도 하다. 내가 미안해한다거나 부끄러워하고 있는 것은 그에게뿐 만이 아닐 게다. 때로는 나의 이런 꼴을 바라다보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나무나 잡초에게까지도 그러한 마음이 든다. 이러한 마음은 그에게뿐 만이 아니라 인간들 모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일 것만 같다. 나 같은 사람은 그로부터 저주를 받아도 싸다는 생각도 든다. 인간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나 한 사람으로 인하여 그의 눈에 비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나와 다를 바 없는 철면피로 보고 있을 것 만 같으니 말이다. 같은 인간끼리라도, 혹시나 나를 알고 있는 어떤 사람이 내가 저지르고 있던 이러한 광경을 보기라도 했다면 어쩌나 싶기도 하다. 내가 이런 미물 앞에서 지구상의 모든 인류를 망신시키고 있었으니. 그는 나(인간)를 어떤 눈으로 보고 있었을까. 그의 눈에 비치고 있는 우리 인간은 그들에게 이익은커녕 해만 끼치고 있는 존재로만 보이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들의 세계에서 아무런 쓸모도 없고 오히려 그들의 안녕과 질서를 파괴하고 있는 인간들을 곱게 봐주고 있을 것 같지가 않다. 이러한 인간들을 지구상에서 완전히 박멸시키기 위한 무슨 나름대로의 연구 같은 것을 하고 있지는 않을지. 자연을 손상시키고 생태계를 파괴시키며 못된 일이라면 골라서 저지르고 있는 인간이라는 동물을 그들의 ‘공동의 적’으로 단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 나 한 사람의 치사하기 이를 데 없는 식탐(食貪)으로 인하여 온 인류를 망신시킨 데 대하여 작으나마 양심의 가책 같은 것을 느끼고 있다. 뒷마당의 피크닉 테이블 쪽에서 무엇인가를 톡톡 두드리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무슨 딱딱한 물체로 나무 판때기를 톡톡 두드리는 것 같기도 했다. 내다보니 어제도 왔던 바로 그 친구였다. 무언가 조그만 하고 둥그스름한 것을 왼쪽 발로 꽉 밟고 있었다. 입으로는 열심히 그 물체를 콕콕 찍어대고 있었다. 껍질을 깨기 위해서였다. 보나마나 호두 아니면 피칸(Pecan)을 쪼아 먹으려는 게 틀림없을 게다. 나는 그의 뒤쪽 방향으로 슬금슬금 다가갔다. 나의 접근을 눈치 채면 입으로 물거나 발로 움켜쥐고 달아날 것이 뻔하기 때문에 숨소리마저 죽여 가며 뒤쪽으로부터 한 발짝씩 다가갔다. 먼 거리에서부터 무턱대고 뛰어들다가 허탕을 친 경우도 여러 차례다. 그는 나(인간)보다 전혀 어수룩하지가 않다. 공격을 할 때는 타이밍이 중요하다. 영점 오(0.5)초나 일초 이내에 승패가 결정돼야 한다. 콕콕 찍어대기에 열중인 그는 내가 가까이 접근하고 있다는 것을 이내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다. 숨 막히는 순간이었다. 그를 붙들겠다는 생각은 애초부터 하지 않았다. 단지 그의 왼쪽 발에 고정시켜놓고 있는 바로 그것을 쟁취하자는 게 나의 목표였다. 정신 없이 쪼아대기에만 열중하던 그는 이런 식의 갑작스러운 공격에 호두인지 피칸 인지를 챙길 틈이 없게 된다. 그는 우선 몸부터 피하기 위해 어렵사리 취득한 먹거리를 바닥에 버려 둔 채 날아갔다. 이 조그마한 먹거리 하나를 두고 벌어졌던 생존(?)을 위한 경쟁. 나는 이 싸움에서의 승자가 된 것이다. 여기서 취득한 전리품(戰利品)을 하늘을 향해 추켜올리며 “야호” 승리의 함성이라도 터트릴 법도 했다. 취득한 전리품의 각질을 벗긴다. 갈색의 속껍질을 마저 벗긴다. 우유 빛 속살을 깨물어본다. 해 호두의 고소하고 달착지근한 맛이 혀끝에 와 닿는다. 쟁취, 경쟁에서의 승리로 얻게 된 전리품이었기에 그 맛이 더 고소하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맛있냐?”, “배부르냐?”, “그래, 남의 것 빼앗아 먹으니 통쾌하냐?”, “실컷 잘 처먹고 잘살아라. 이 나 같은 미물만도 못한 인간아” “까아악 까아아악” 전봇대 위에 앉아 나를 내려다보며 소리치는 목청이 여느 때보다 앙칼지고 신경질적이다. 증오의 빛이 보이는 듯도 하다. 속상하고 분을 삭이지 못하여 그대로 물러나기는 싫은가 보다. 자리를 떠나려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