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닭 같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박영보 수필 1집] 촌닭 같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박영보 수필 1집] | Page 137

얄미운 마누라 아침나절 뒤꼍을 서성거리다가 철사 망으로 둘러 쳐진 체인링크(Chain Link) 울타리 밑에 거의 터질 것 같이 부풀어 오른 꽃망울들을 봐 두었다. 노란 색깔의 꽃망울들이 연한 바람결에도 살랑거리고 있는 것이 가냘프게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질기고 강한 생명력에 대한 증거라도 하려는 듯 소담스럽고 싱싱하다. 일월 중순의 바람은 아직도 차가운데 어느새 꽃망울이 이만큼이나 부풀어 올랐나 싶었다. 하기야 요 며칠 사이 낮 동안엔 햇볕이 제법 따사로워 졌다 싶더니 그 틈새를 놓치지 않고 고개 내민 수선화. 오후 늦으막에는 활짝 피어 날 것 같았다. 몇 년 전 꽃집에 들렸다가 두세 뿌리를 사다가 심어둔 것이다. 이제는 여러 뿌리로 불어나 해마다 이맘때면 샛노란 꽃들을 피우고 있다. 봄소식을 가장 먼저 전해주는 전령사의 역할을 해주고 있다. 접시 위에 올려놓은 찻잔 의 모습을 하고 있는 이 꽃은 눈이 부시고 황홀할 만큼 밝은 샛노란 색깔을 띄우고 있다. 하얀 색, 아이보리색 또는 꽃잎 둘레에 자주색 선이 그어져 있는 종류도 있지만 나는 이 샛노란 색의 수선화를 좋아한다. 이 노란 색이 수선화의 원조이기나 한 것처럼 다른 색깔의 꽃에는 관심이 별로 가지 않는다. 하나같이 고개를 아래쪽으로 숙이고 있어 수줍음을 타고 있는 여린 소녀의 모습을 떠오르게 하여 더욱 정이 가기도 한다. 매년 이맘때면 예외 없이 피어나는 꽃이지만 아내가 일에서 돌아오면 깜짝 놀래줄 일거리가 생겼구나 싶었다. 때 이르게 피어난 꽃 소식에 애들처럼 좋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해 보면서. 그녀가 일에서 돌아오려면 아직도 한 시간 여는 족히 남아있을 것 같았다. 그사이 개밥이나 사와야겠다 싶어 마켓을 다녀 와 보니 그새 그녀의 자동차가 와 있다. 집안으로 들어갈까 하다가 뒷마당으로 직행을 했다. “빨리 나와 봐” 라며 무슨 큰일이라도 생긴 것처럼 요란스레 불러내려는 심사였다. 이 노란 색깔의 꽃을 보여주며 봄소식을 알려줄 양으로 뒷마당으로 직접 들어갔다. 재친 걸음으로 울타리 곁엘 가보니, 아뿔싸, 지금쯤 활짝 피어나 향내라도 풍기고 있어야 할 꽃들은 간 곳이 없다. 잘려나간 대공의 밑동엔 아직 까지도 진물이 마르지 않은 채다. 집안으로 들어가 보니 부엌 개수대 위쪽 창문턱에 노란 색의 꽃이 보인다. 큼지막한 유리컵에 활짝 핀 수선화가 뭉텅이로 꽂혀 있다. 몰인정하게 잘려진 꽃을 생각하면 생각을 할수록 부아가 치민다. 역정을 내고 있는 나에게 해해거리며 “아침 일찍 집을 나가면 오후 늦게 돌아와야 하는 나 같은 사람도 꽃을 좀 보며 즐기자”는 거였단다. 뒤뜰에 숨어있는 꽃 같은 걸 일부러 나가서 감상을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도 없는 나 같은 사람도 꽃을 보며 즐겨야겠단다. 눈에 잘 뜨이는 곳에 놔두고 오가면서 바라다보며 즐기자는 거였는데 그게 뭐 그리 큰 잘못 된 일이냔 다. 꽃이란 보면서 즐기자고 심는 거지 보이지도 않는 울타리 밑 구석 지에 처박아 두었다가 무엇에 쓸 것이냔 다. 정말 못 말릴 여자다. 말이나 못 하면 밉지나 않지. 수줍은 듯 울타리 밑에서 고개 숙인 수선화, 있는 그대로, 본래의 모습대로 놔둔 채 바라보며 즐기면 어디 덧나느냐니까, 자기나 나가서 울타리 밑에 머리를 쳐 박고 실컷 들여다보고 있으란다. 곱디곱고 연하디 연한 그러한 수선화를 그렇게나 야멸스럽게 난도질을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건지. “여느 때 잡초 한 포기라도 뽑아 줘 봤느냐” 라거나, “물 한 방울이라도 줘 본 일이 있느냐”를 비롯하여 “멋대가리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여자, 남자가 마누라에게 봄소식, 꽃 소식을 무드 있게 전해 보려던 마음 같은 것은 일구나 있는지.”라며 계속하여 투정을 부려도 가소롭지도 않다는 듯 빙글거리는 꼴이 얄밉기만 하다. “무드도 낭만도 없는 여자 같으니라고” 라며 꼬투리를 잡기 위하여 별의 별 수를 다 써 봐도 내 잔소리 같은 것에는 들은 척도 하지 않은 채 약만 올릴 대로 올려놓고 있다. 그냥 알밤이라도 메기고 싶을 만큼 얄밉기만 하다. “꼴에, 꽃이라는 것이 곱고 예쁘다는 것은 알고서 하는 짓거리인지. 주제에 꽃 같은 걸 가까이에 두고 바라다보고 싶은 마음 같은 건 있기는 하구? 그런 땐 제법 여자인척 하구 있네. 웃기는 여자다. 정말” 이라며 계속 두런거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