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닭 같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박영보 수필 1집] 촌닭 같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박영보 수필 1집] | Page 134

그 싸움에서 패배자가 된 덕택에 오늘 이렇게 한가하게 상념에 잠길 수도 있는 시간과 공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는 생각을 해 보니 의미도 모를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그러고 보니 아내와의 말싸움에서 나는 목청만 높였지 단 한 번도 이겨본 일이 없었던 것 같다. 말싸움에서 아내의 목소리가 낮아지거나 중단이 될 때는 어떤 비장의 무기가 생겼거나 결단이 세워졌다는 사실, 아니면 승산을 자신하는 모종의 계략(?) 같은 것이 세워 졌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나는 이러한 사실을 기억하고 대비를 했어야 하지만 매번 당하기만 하는 쪽은 나 자신이다. 아내와의 말싸움에서 이겨본 적은 없지만 그 싸움에 지면서도 내가 크게 손해를 입었던 기억은 없다. 금은보화를 탐내지도 않고 백만장자를 부러워하지도 않으며 세칭 고관대작이라는 사람들 앞에서도 주눅이 들지도 않고 있는 아내가 고맙기도 하고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운송료를 포함하여 십 몇 불짜리 등나무 한 그루를 사느냐 마느냐, 심느냐 마느냐를 두고 벌려온 며칠간의 말싸움의 틈새에서 어렵사리 뿌리 내린 한 그루의 등나무가 이처럼 우리를 감싸주고 향긋한 그늘을 만들어 주며 사랑과 정 가득한 눈길을 나눌 수 있는 쉼터가 될 수 있을 줄이야……. 욕심이라는 게 고작 몇 불도 안 되는 꽃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아니면 조그만 물 컵보다도 작은 꽃병 같은 것을 두고 “사느냐” “마느냐”롤 놓고 다툼질을 하다가 자기 뜻을 이루고 나면 성취감에 취하기나 한 듯 해해거리는 아내가 밉지가 않으니 싸움은 싸움 같지도 않고 나이 육십이 된 부부의 노망 기 든 소꿉장난 같기도 하다. 승리도 패배도 아닌, 세상을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또 다른 의미의 재미라고 해도 될는지 모르겠다. 마침 삼월 십 칠일이면 우리의 결혼기념일이다. 아이리시의 명절이기도 한 성.패트릭스 데이 이기도 하다. 이때는 등꽃이 만개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결혼기념일이기도 하니 보라와 초록의 조화를 이룬 선물을 준비해 두어야겠다. 보라색의 등꽃 몇 송이, 극락조 두어 송이, 아이보리 색깔의 칼라 꽃 두어 송이와 초록색 잎새를 잘라다가 예뿐 꽃병에 꽂고 한편의 시도 적어 매달아 놔야겠다. 병원에서 돌아오면 볼 수 있도록……. 저녁때는 아이들이 깜짝 쇼를 위해 미리부터 비밀스럽게 예약해 둔 분위기 있는 식당에 가서 저녁나절을 보낼 일을 생각하니 지금부터 엷은 흥분이 일기 시작한다. 아내는 이런 일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모르는 척 놀라는 시늉을 하며 “와~”라는 탄성과 함께 초록색 드레스를 입고 따라 나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