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닭 같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박영보 수필 1집] 촌닭 같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박영보 수필 1집] | Page 133

등꽃 축제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뒤뜰엔 온통 보라색 등꽃이 한창이다. 인근의 씨에라 마드레(Sierra Madre)라는 동네의 어떤 가정에는 백 년이 넘는 수령의 등나무 한 그루가 있다. 이 등 넝쿨은 얼마나 큰지 이웃에 있는 서너 채의 집 마당 모두를 덮고 있다. 그 넓기는 한 에이커는 족히 될 것 같다. 매년 삼월이면 이곳에서 등꽃 축제가 열리기도 하는데 많은 방문객들이 찾아오기도 한다. 우리 집 뒤뜰에 있는 등나무 넝쿨은 고작 스무 평 정도의 넓이에 지나지 않지만 패티오 전체를 뒤덮고 있는 보라색 꽃 물결은 마음을 들뜨게 하는데 모자람이 없을 것 같다. 볼거리로서 붐비며 눈요기에 그치고 마는 그러한 큰 잔치는 아니더라도 어느 누구의 방해를 받지도 않으며 어떤 상념에 잠길 수 있는 이 자리에 정을 붙여 온지도 오래다. 다람쥐가 곤두박질하듯 뛰어 다니는 모습을 바라보거나 새들의 노래 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한적한 뒤뜰. 보라색 꽃물 결 아래에 앉아 사색을 할 수 있는 시간도 내게는 값진 생활의 한 부분이 되기도 한다. 이럴 때 혼자서 라면 넝쿨 사이로 스미는 햇살을 받으며 눈을 감고 어떤 생각에 잠겨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꽃 그늘 아래에 놓인 철제 테이블에 마주 앉아 한 잔의 차를 나누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누군가가 와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꽃 향기가 온 뜨락에 풍기는 등나무 넝쿨 아래에 있는 등받이 의자에 등을 기대고 있자니 아내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생긴다. 이 널따란 공간을 등꽃으로 채워준 사람이 바로 아내이기 때문이다. 지난날의 추억, 기쁨과 슬픔, 사랑과 그리움, 그리고 주어진 현실에 대하여 감사하는 마음 까지도 불러 일으켜 주고 있는 이 자리이기도 하다. 이 자리는 실로 아내의 주체할 수 없는 욕심과 고집으로 마련된 자리라고도 할 수 있겠다. “나는 보라색과 초록색이 그렇게나 좋을 수가 없다”며 등나무 하나를 사다 심자는 아내의 반복되는 주장이 있을 때마다 나는 반대만을 되풀이 했었다. 등나무의 생태, 특성이나 크기에 대하여 알만큼은 알고 있는 나로서는 만류를 할 수 밖에 없었다. “보라색을 좋아한다며 라일락을 심자고 안달을 하여 심어 줬더니 이젠 또 등나무냐” 라며 반대를 하는 이유를 설명해 주기도 했었다. 등나무는 한 없이 뻗어가는 넝쿨 식물로서 이 넝쿨을 받혀 줄 구조물이 없으면 안 되므로 사다 심기만 하는 것으로만 끝낼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보라색의 라일락도 수십 그루로 늘어났으니 정 무엇을 심고 싶으면 등나무 대신 과일나무 같은 다른 종류의 나무를 사다 심자는 나의 의견에 수긍을 하는 듯 잠잠해 졌었다. 나는 이것으로 등나무에 대한 이야기는 마무리가 된 것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고 나서 한 열흘 정도 지나서였을까. 아내는 내 앞에 무슨 기다란 상자 하나를 툭 내던지며 “알아서 해” 라는 것이었다. 열어보니 새끼손가락보다도 더 가느다란 한 그루의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