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닭 같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박영보 수필 1집] 촌닭 같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박영보 수필 1집] | Page 13

붓고 있는 그런 마음이 내게도 있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구나. 나도 네 엄마 못지않게 너를 사랑하고 있다는 뜻일 게다. <중략> 그 아이가 지금은 만으로 서른 셋, 자신의 가정을 꾸미고 있는 성인이 되어있다. 집안의 크고 작은 일이나 내 비즈니스에 관련된 법적인 절차나 문제에 대하여는 애드바이저로서의 역할도 해준다. 녀석을 바라다보고 있자면 빠르게 스쳐간 시간의 속도를 실감하게 된다. 일기는 삶을 살아가면서 남기는 하나의 흔적이기도 하다. 지난날들에 대한 기억들을 되살려 주기도 한다. 살다 보면 기억에 남기고 싶은 일도 있고 기억조차 하기 싫은 부분도 있기 마련이다. 삼십 여 년 전 벌거숭이였던 녀석의 모습이 역력히 떠오른다. 좋은 일이든 궂은일이든 하나도 지우고 싶지 않은 흔적들이다. 만일 내가 그때 아내의 육아일기에 끼어드는 주책을 부리지 않았더라면 오늘 그때의 그 장면들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을지도 모른다. 주책없이 남의 일기 장에 끼어든 나의 돌발(突發)에 대한 후회나 미안한 마음 같은 것도 들지 않는다. 언젠가는 녀석이 그 일기 책을 읽어 볼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기도 하다. 녀석이 가정을 꾸리고 자녀가 생기게 될 때쯤에는 건네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삶을 살아가면서 부모와 자식 간에 교차하던 마음의 편린들을 읽을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에서이기도 하다. 녀석도 제 마누라의 육아일기 책에 끼어들어 몇 마디씩을 남겨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해 본다. 훗날에 제 마누라의 육아일기 책을 뒤적여 보며 그의 지난날들을 지금의 나처럼 되새기고 있을 모습을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