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닭 같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박영보 수필 1집] 촌닭 같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박영보 수필 1집] | Page 127

그런데 두세 시간여에 걸쳐 완성시킨 간판의 수명은 단 서너 시간도 채 되지 못하여 물 세척을 당해야 할 운명에 처하고 말았다. 그날이 토요일 이었는데 아버지는 퇴근길에 저녁 식사 대접을 한다고 법원 직원 대여섯 명을 데리고 오신 것이다. ‘콩나물 팝니다.’는 여지없이 그들의 눈에 들어왔을 것이다. 이를 보는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그런데 이날 따라 아버지는 아무런 말씀도 없으셨다. 이때 아버지의 진짜 속마음은 어떠했으며 무슨 생각을 하고 계셨을까를 생각해 본다. 법원의 서기과장이 어머니에게 다가와 “사모님 이게 웬일이십니까?” 라는 말에 어머님께서는 새빨개진 얼굴을 돌리며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손님들이 떠나간 위에 몽당 빗자루로 어깨를 두세 차례 얻어맞고 “당장 가서 지우지 못해?” 라는 한마디에 장래의 콩나물 기업에 대한 꿈과 계획 그리고 조그만 희망까지도 마감해야 했던 기억이 새로워진다. 돌아서며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때 어머니가 흘린 그 눈물의 의미를 새겨 보려니 가슴이 메어 오고 무거워 진다. 이미 고인이 되신 부모님, 가난에 찌든 공무원으로서 허리띠를 졸라매면서도 떳떳하고 부끄러움 없는 삶의 모습을 지키려던 날들이었다. 현재의 우리 모습을 이루는데 밑거름 역할을 해주신데 대한 감사를 드리고 싶다. 반짝거리고 요란스럽지도 않은 나의 현재 모습 이지만 부끄러움 없는 삶의 모습을 지켜 나가겠다는 마음가짐을 갖도록 해주신 분들이시다. 공직자로서는 일등 공무원이었을지는 모르나 가장으로서의 점수는 받지 못했던 아버님. 4-50 여년의 공직생활을 마치고 정년퇴직을 할 때 일시불로 받은 퇴직금으로는 변두리지역에서 조그만 판잣집 한 채도 마련할 수도 없었다. 나는 이렇게 무능한 가장이셨던 아버지에 대한 불만과 반발심으로 가득 했을 때가 있었다.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노란 색깔의 쇠붙이 훈장의 의미를 과소평가하던 내가 이제 와서야 이러한 아버지에 대한 지난 모습을 되돌아보게 되다니……. 나는 지금 내 자신의 자녀를 위한 콩나물시루는 어떤 모습으로 안쳐 져야 할지를 생각해 보고 있다. 정화된 생수를 마련하기 위해 어떤 마음과 몸의 모양새를 갖춰야 할지를 생각해 본다. 비록 몇 시간 만에 물 세척을 당하고 만 콩나물 기업에 대한 꿈이었지만 단 헌 번만이라도 분필로 썼던 ‘간판의 효과’를 볼 수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지금껏 남아있다. 당시 대문에 ‘콩나물 팝니다.’라고 씌워진 간판의 아랫줄에 ‘바느질도 합니다.’ - ‘한복 전문’이라는 말을 곁들여서 써 넣었더라면 더 좋을 뻔 했다는 생각도 해본다. 요샛말로 더 프로다운 홍보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문안이 되었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50 여년이 지난 지금 엉뚱한 후회를 해보며 생전의 부모님 모습을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