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닭 같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박영보 수필 1집] 촌닭 같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박영보 수필 1집] | Page 113

훗날 어머님께서는 내 아내에게 웃으면서 이렇게 실토를 하시더란다. “실은 그 암탉을 돌려보내기가 좀 아깝기도 하더라. 그것 한 마리로 한 상을 차리면 우리 식구 모두에게 한 두 끼의 푸짐한 밥상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고. 가난한 공무원의 아내, 그러면서도 조그만 욕심 때문에 남편과 가정의 스타일이 구겨지지 않게 하시려 던 어머님이셨다. 나는 또 나대로, 마음속으로 ‘저 닭 한 마리를 잘만 키우면 일 년 내내 계란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텐데’ 라든지 ‘잘 생긴 수탉 한 마리를 사다가 함께 길렀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내년 봄쯤에 알을 품게 하면 적어도 열 마리 이상으로 불려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는 아직 어느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는 비밀이기도 하다. 잘 먹고 잘산다는 말들을 하거나 듣기도 한다. 그런데 ‘잘 산다’는 말 앞에는 ‘잘 먹는다’라는 말이 붙어 다닌다. 잘 산다는 게 곧 잘 입고 잘 먹는다는 것을 뜻하고 있는 것일까. 사람답게 산다는 말도 있다. 물질만능의 시대에서 모든 가치판단의 기준을 마치 ‘물질’에 두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그런지 소위 말하는 고관대작이나 백만장자 앞에서는 별다른 이유도 없이 고개를 떨구기도 하고 부러워하기도 하는가 보다. 그러니까 사람답게 산다는 것은 곧 고관대작이나 백만장자의 모양새를 갖춘 삶을 사는 것으로만 생각하고 있는가 보다. 이름은 생각이 나지 않고 있지만 어느 중국 시인의 “집은 비바람을 막을 뿐이고 옷은 추위를 막을 뿐이며, 음식은 배고픔을 면할 뿐”이라며 지나친 욕심으로 인하여 이성까지를 잃고 있는 사람들을 탓하던 말이 떠오르기도 한다. 가끔은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질 때가 있다. 가난했고 어려움도 많았지만 지금처럼 이렇게 삭막하지는 않았던 시절. 헌 사과궤짝 하나를 소중히 여기고 굴비 두름의 볏짚 하나도 허술하게 여기지 않던 시절. 작은 배려에도 감사하고 서로 사양하며 양보할 줄도 알던 시절, 고난 속에서도 외롭지는 않았던 그때 그 시절이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