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닭 같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박영보 수필 1집] 촌닭 같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박영보 수필 1집] | Page 111

어머님과 씨암탉 그때도 사과상자는 있었다. 얇은 나무판자로 만들어진 상자였다. 그 안에는 대개 사과끼리 부딪혀 흠집이 생기지 않도록 왕겨나 볏짚을 섞어서 한 접씩, 즉 백 개씩의 사과를 담아 포장을 한 상자였다. 굴비도 있었다. 그러나 그때는 요즈음같이 세련된 선물용 상자에 포장된 것이 아니라 몇 가닥의 볏짚으로 한 줄에 열 마리씩 엮어 두 개를 합한 두름으로 팔았다. 빈 사과상자는 나중에 광이나 헛간에 두고 호미나 모종삽 같은 작은 공구나 잡동사니를 넣어 보관하기에 십상이었다. 가끔은 철사로 된 망으로 상자 앞면의 일부를 막고 또 한쪽에는 판자 쪼가리로 문을 달아 토끼 한 마리쯤 키우기에도 안성맞춤이었다. 위쪽 뚜껑을 모두 떼어낸 다음 그 안에 볏짚을 깔고 오목하게 토닥거려두면 훌륭한 둥우리가 되기도 헸다. 암탉이 꼬꼬댁 거리며 상자 밖으로 나온 후에 가보면 따끈한 계란 한 개가 놓여있기도 했다. 버릴 수도 있는 이런 궤짝 하나를 이처럼 여러 가지의 용도로 유용하게 쓴다는 것은 재활용의 가치로서 부족함이 없었던 것 같았다. 굴비를 엮었던 볏짚이래야 나중에 불쏘시개로 쓰거나 두엄더미에 섞어두었다가 썩으면 퇴비가 되는 정도의 재활용 가치밖에 없었을 게다. 이에 비해 사과 상자는 그래도 제법 쓸 만한 가구로서의 역할까지 했던 것 같다. 요즘에 와서는 굴비도 선물용 상자에 포장을 해서 판다지만. 사과를 담기 위해 만들어진 상자가 ‘사과상자’이다. 세월이 가다 보니 사과를 담기 위한 보잘것없던 사과나 굴비상자 하나가 이렇게 값진 재활용의 가치를 지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