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닭 같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박영보 수필 1집] 촌닭 같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박영보 수필 1집] | Page 109

생일선물 어려서부터 생일이라고 해서 마음이 설레거나 흥분을 해 본적이 없는 나다. 애타게 기다려 본 적도 없다. 나라에서 주는 가느다란 녹으로 겨우겨우 살아가는 가난한 공무원 집안의 팔 남매 중에서 다섯 번째였다. 나는 집안에서 서열상으로도 그리 중요한 위치에 있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장남은 집안의 장손으로서 나름대로의 대우를 받게 되었을 것이고 막내는 가장 어리기 때문에 다른 자녀들보다 조금이나마 귀여움을 더 받게 되었을 것이다. 당시에도 ‘생일선물’이나 ‘생일축하 노래’ 같은 것이 있었던가 싶다. 생일에 관한 한 이처럼 무관심 속에 있던 나는 내 생일이 언제인지 조차 기억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어쩌다 아침 밥상에 미역국 한 대접 정도가 추가되거나 밥그릇에 담긴 흰 색깔의 비율이 여느 때보다 높아지면 ‘아, 오늘이 누구의 생일인가보다‘ 하는 정도였다. 한술의 미역국을 뜨는 것 자체를 멋쩍어 했던 기억도 난다. 이러한 나의 생일날 풍경은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도 이어져 갔다. 대학에 들어가 사 년 동안의 자취 생활과 졸업 후 입대를 한 다음부터는 그나마도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었다고 할 만큼 나의 일이 아닌 것 같았다. 어떤 때는 날짜가 한참 지난 후 다른 목적으로 달력을 보다가 지나가 버린 나의 생일 날짜를 발견하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이렇게 길들어 온 나는 제대를 하고 자취를 하며 직장 생활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생일 같은 것에는 마음에 두지도 않고 있었다는 게 바른 표현일 것 같다. 나는 지금도 생일을 맞아 선물도 받고 생일축하 노래를 불러주면 닭살이 돋는 것 같은 느낌이다. 까짓 생일이라고 하여 요란을 떨고 있다는 자체가 내 생리에는 맞지가 않는다. 그러니 요즈음 생일이다 육순이다 아니면 어린아이의 돌잔치라 하여 고급 음식점이나 호텔 같은 데서 크게 잔치를 벌이며 요란을 떨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나에게는 우스꽝스럽게 여겨질 수밖에……. 거기에 또 RSVP(Repondez s'il vous plait/Please Reply)라고 참석여부를 미리 알려달라는 토까지 붙인 청첩장을 보내오는 경우를 보면 무슨 빚 독촉을 받고 있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기도 한다. 그런데 결혼을 한 후부터는 적어도 일 년에 한 번씩은 이러한 닭살을 돋는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결혼을 한지 사십 년이 지난 지금쯤엔 어느 정도는 익숙해져 있을 법도 한데 나에게는 아직도 아니다. 달력에는 나의 생일 날짜에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고 옆에는 조그만 글씨로 YB-B 라고 써 있다. YB 는 내 이름의 이니셜이고 B 는 생일 즉 Birthday 를 뜻하는 것이다. 나는 달력에 써있는 이 표시를 바라다볼라치면 조그만 갈등(?) 같은걸 느낄 때가 있다. <내 생일을 잊지 않기 위해> 적어 놓는 것으로만 해석을 한다면 고맙고 흐뭇해 할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 여자가 자기 남편의 생일을 구태여 적어놓지 않는다면 기억조차도 못할 일>이 아닐까를 생각하면 섭섭한 생각이 들기도 하니 말이다. 그러나 이것은 배부른 자의 당치도 않는 투정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니 모른 척 지나칠 수밖에……. 두 아들 녀석이 어느새 삼십 대 후반과 중반에 들어서 있다. 전문직에 종사하고 있는 이들의 수입도 그들의 나이에 비해 제법 많은 편이다. 내 생일이 다가오면 이 녀석들과 아내가 은밀히 속닥거리고 있는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무언가 모의를 하고 있는 건지 뻔 한 일이다. 모른 척 하며 뒤돌아서는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그들이 모의를 하는데 방해가 되지 않게 하려는, 아니면 더 크고 거창한 모의를 할 수 있도록 최대한의 기회를 주려는 얄팍한 저의가 숨겨져 있지는 않았을까. 그들에게서 무언가를 바라는 것이 있기나 한 것처럼……. 우리 부부의 생일이나 결혼기념일 같은 때는 녀석들에게서 불란서나 이태리 식당 같은 데서 멋진 저녁식사 대접 을 받는다. 본래 좀생이인 우리 부부가 “야 임마, 오늘 먹은 저녁 값이면 아빠가 좋아하는 자장면 수십 그릇은 되겠다.”고 말하면 “그것도 사 드릴께요”라며 웃고 있는 아이들이 고맙다. 여름휴가나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 연휴 기간에 몇 주 동안 크루스(Cruise) 여행을 다녀오라든지 유럽이나 남미 여행을 다녀올 것을 종용하기도 한다. 십오 년이 넘게 이용해온 차를 신형 SUV(Sports Utility Vehicle) 차량으로 바꾸어 주겠다고 도 한다. 한사코 사양만 하고 있는 우리 부부를 그들은 “이해 할 수 없다”며 고개를 젓는다. 아내는 “직접 받은 것 이상으로 기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