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따라 박영보 시집 오늘 따라 - 박영보 시집 | Page 70

장모님과 무씨 꼬깃한 종이봉지 하나를 찾았습니다. 겉에 ‘무씨’라고 써 있었습니다. 장모님이 생전에 가져다주신 것이었습니다. 장모님께서 생전에 나에게 주신 마지막 선물이기도 합니다. 이층 옥상 적갈색 플라스틱 통에다 손수 심고 가꾸어 받아온 씨앗이었습니다. 틈만 나면 뒷마당에 나가 손에 흙을 묻히고 있는 나에게 “이거 한번 심어 봐”라며 주셨던 것입니다. 잘 보관해 두었다가 봄이 되면 심으려던 참이었는데 그게 벌써 삼 년이 훨씬 넘었습니 다. 그 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입니다. 장모님의 정성 어린 손길을 잊고 있었다는데 대한 가책이 느껴졌습니다. 삼 년이 훨씬 넘은 이 씨앗에서 싹이 나올지가 걱정이었습니다. 대충 골을 파서 씨를 술술 뿌려도 될 것을 무씨 한 알 한 알을 엄지와 검지로 집어 일정한 간격으로 심었습니다. 장모님의 손길이 담긴 이 씨앗을 함부로 다루기가 싫었고 씨알 하나하나에는 귀한 생명이 담겨져 있다는 생각에서였습니 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정성을 들였습니다. 옆에서 돋아나는 잡초도 뽑아 주고 아침저녁 물을 주었더니 하나 둘씩 싹이 돋아났습니다. 장모님을 만나는 것처럼 반가웠습니다. 몇 주 후면 열무김치를 담글 수 있을 만큼 자랄 것 같습니다. 장모님께서 꽁보리밥에 열무김치 비빔밥을 만들어 주시기 위해 와 주실 것만 같습니다. 꼭 와 주실 수 있을 것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