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따라 박영보 시집 오늘 따라 - 박영보 시집 | Page 67

아버지 나를 고관대작의 아들이 아닌 가난한 공무원의 아들로 태어나게 해 준 것 감사 드립니다. 백만장자의 아들이 아닌, 학교 다닐 때 월사금도 내지 못해 쫓겨 다니게 했던 가난뱅이의 아들로 태어나게 해 준 것 감사 드립니다. 초가 한 칸 남기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가면서도 미안해하지도 않으신 당신, 부끄러워하지도 않으신 당신이었습니다. 나의 눈앞, 코앞만을 볼 수밖에 없던 좁디좁은 눈으로 한 뼘의 땅만을 내려다만 보다가도 더러는, 널따란, 그 널따란 우주 공간도 함께 바라다 볼 수 있게 해 주신 것 감사드립니다. 나를, 당신을 닮아 고지식하고 앞뒤가 꽉 막혀 때로는 속상하고 때로는 화딱지가 나도록 답답한 아들로 태어나게 해 주신 것 감사드립니다. 대통령의 아들로 태어나지 않은 것은 그나마 다행이지만 기왕이면 시를 쓰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으면 더 더욱 좋았을 걸 그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