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자의 샘터 Soonsam 2018 Winter | Page 8

영어부 목사 칼럼 경계선상의 위치에서: 아시아계 미국인/캐나다인으로서 성장하기 제이콥 목사 학창시절, 저는 아버지의 기대 때문에 힘들었습니다. 저희 아버지 는 “너는 전부 A학점을 받아서 나를 기쁘게 해줘야 한다”는 전형 적인 아시아계 아버지는 아니셨지만, 제가 좋아하는 것들 대부분 을 못마땅해 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제 인생의 소소한 것까지 관 여할 수 없다는 것과 제가 아마도 의사가 되지 않을 거라는 것을 깨달으셨을 때 저에 대한 실망감이 크셨습니다. 저는 학교 공부 와 친구들과 지내는 것에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공부면에서는 집 중하는데 힘들었습니다. 제가 다른 아이들이 하는 것과 똑같은 말 썽을 피울 때도 선생님께서는 유독 저만 학교 사무실로 보내시곤 했습니다. 저는 아시아인에 대한 고정관념처럼 수학은 잘 했지만, 과학과 관 련이 없는 다른 과목들은 정말 못했습니다. 선생님들께서는 제가 그렇다는 것을 다 아셨는데, 그 중 한 분은 종종 저에 대해서 인종 과 관련된 농담을 하시곤 했습니다. 이것이 백인 주류 사회에서 아 시아계 아이에게 주어지는 ‘표준’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 는 사회성이 좀 부족한 아이였기 때문에 힘들었습니다. 언어장애 가 있었고 신체적으로 늦게 크는 편이었습니다. 종종 저희 반에 제 가 유일한 동양인이었고, 학교 전체에서 유일한 동양인이었던 적 도 있었습니다. 소수민족 중에서도 소수 쪽에 속했기에 상당한 인 종차별적 괴롭힘을 견뎌야 했습니다. 거의 매주 싸움에 휘말렸고, 싸움과 괴롭힘 때문에 행동이 거칠어졌습니다. 실제로 싸움도 꽤 잘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점점 억울한 마음이 들었고, 화가 나고, 지나치게 예민해졌습니다. 제가 한국인이라는 게 싫어지기 시작했 지만, 제 얼굴이 – 그리고 집에서 하는 모든 것들이– 제가 한국인 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게 했습니다. 저는 집에서의 한국 문화와 학교에서의 캐나다 문화 사이에 갇혀 있었습니다. 8 순례자의 샘터 www.soonsam.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