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자의 샘터 Soonsam 2018 Spring | Page 33

를 졸업하고 직장 생활을 하다 30세 때 더 이상 거부할 수 없 는 이끌림에 ,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1월에 신학공부를 하 기로 결심했어요 . 그리고 4월에는 현재 아내 되는 김지영 사 모님을 교회 지인을 통해서 소개받으셨답니다 . 그리고 그 해 7월에 결혼하셨는데 당시 모든 일이 너무 자연스럽지만 신 속하게 진행되다 보니 결혼에 대한 주변의 오해도 받았다네 요 . 윤전도사님 입장에서는 정말 아무런 미래가 보장되어 있 지 않은 수험생을 배우자로 선택하고 믿고 함께해 달라 하 기가 쉽지 않잖아요 ? 그래서 먼저 물으셨대요 . “ 수험생도 괜 찮겠느냐 ” 고 . 이 때 돌아온 대답은 “ 어차피 갈 길이고 본인 이 그 길에 대해 확신만 있다면 괜찮다 ” 였고요 . 돕는 배필을 만나게 되신 거죠 . 참으로 모든 것이 순조롭게 물 흐르듯 진 행된 듯 보입니다 .
손을 내밀어 준 교회
신학교를 한국에서 마친 전도사님은 성경에 직접적인 언급 은 없지만 우리가 자주 고민하는 성경의 윤리적 적용을 공부 하기 위해 기독교 윤리를 선택했어요 . 그리고 그 과정을 알 아보던 중 유일하게 석사과정으로 기독교윤리를 전공할 수 있는 곳이 Wake Forest에 위치한 Southeastern 신학대학교 였고요 . 우연을 가장한 필연인지 당시 김지영 사모님이 선생 님으로 근무하고 있던 학교에 최동갑 목사님의 차녀 에이미 선생님이 근무한 적이 있었고 이렇게 친분을 통해 랄리와 정 착에 대한 여러 정보를 얻을 수 있었지요 . 전도사님이 처음 RDU공항에 내릴 때 마중을 나온 분은 최동갑 목사님 큰딸 그레이스 , 신학교 기숙사에 정착할 때 모든 과정을 내 일처 럼 도와 주셨던 김연갑 전도사님 가정 , 지도 교수님은 최목 사님과 호형호제하는 사이 …... 여기에서도 모든 상황이 자 연스레 저희 랄리제일한인침례교회 쪽으로 흘렀던 거죠 . 흥 미로운 것은 전도사님이 한국에서 사역했던 교회도 최동갑 목사님과 뗄래야 뗄 수 없는 인연이 있었던 교회라 하네요 . 저희 교회로 오실 수밖에 없는 여러 상황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미리 손쓰신 그분이 느껴집니다 .
더딘 듯 보이나 지체하지 않으시는 손길
모든 것이 순조로워 보이는 전도사님께 신앙적 시련이나 어 려움은 없었는지 여쭈어보았습니다 . 전도사님이 처음 시련 혹은 어려움으로 부딪힌 것은 신학 공부를 하겠다 마음먹고 신대원 입학 시험을 치렀지만 낙방했을 때였답니다 . 혼자였 어도 힘든데 이미 배우자까지 있는 상태에서 자신을 믿고 기 다려준 아내에게 너무 미안하고 안타까웠다고 하네요 . 그리 고 좀 더 기다리게 하신 시간이 힘드셨대요 . 두 번째 어려움 은 지금 , 현재랍니다 . 처음 미국으로 유학 올 당시 3년 정도 기간에 석사학위를 마칠 계획이었는데 1년만에 조기 졸업하 는 기쁨도 잠시 예정과 달리 너무 빨리 졸업해 버린 나머지 다음 일을 계획하거나 준비할 틈이 없었던 거죠 . 지금은 다 음을 준비하며 기다리고 계신답니다 . 때론 우리의 눈에 기다 리는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의 완전한 계획 안에서 지체 없이 실행하고 계셨음을 나중에 깨닫게 될 때가 있죠 ?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기다리는 전도사님을 보니 더딘 듯 지체하지 않는 손길을 더욱 기대하게 됩니다 .
음향 담당을 맡게 되었을 때 , 우리 교회 음향 System이 한국 의 교회에서 사용하던 system과 똑같아서 기계를 새로 익히 거나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 없었던 것도 감사의 제목이었다 고 합니다 . www . fkbc . 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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