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자의 샘터 Soonsam 2018 Fall | Page 38

가정탐방 회생활을 하고 있던 차에 다시 만나게 되었던 두 사람은 예전 과 관계의 회복에 대하여 전해주신 말씀이 지금도 잊혀지지 에 알지 못했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면서 친구에서 연인 사 않습니다. 오랜만에 들은 너무나 값진 말씀에 큰 은혜를 받고 이로 발전했습니다. 고등학교 어린 시절, 김태양 형제님은 마 무조건 랄리제일한인침례교회에 출석하기로 결단을 하게 되 음에 드는 장미라 자매님 앞에서 너무 긴장해서 편하게 말도 었습니다. 물론 금요일 저녁 마하나임 모임, 주일 예배, 주일 못 하고 자연스럽게 행동하지 못했고, 그 속내를 몰랐던 장미 오후 마하나임 성경공부, 그 외의 여러 행사가 학업으로 바빴 라 자매님은 그런 모습이 그저 이상할 뿐이었습니다. 그렇지 던 1년 차에는 마음에 부담으로 다가올 때가 많았습니다. 그 만 형제님이 마음을 비우고 진짜 친구로 다가갔을 때 비로소 러나 학교에서, 세상에서 힘들고 무거운 짐을 가지고 무거운 그 진가를 발휘할 수 있었고, 그러한 형제님의 모습에 자매님 마음으로 교회로 향했다가도 돌아올 때는 주님의 어루만지심 의 마음이 움직이게 되었습니다. 본격적으로 교제한 지 1년도 과 형제 자매간의 사랑과 교제로 인해 영적인 회복을 체험할 채 되지 않아 결혼식을 올리고 두 달 후에 Texas A&M Uni- 때마다 교회와 마하나임의 끈을 놓을 수 없었습니다. versity 석사학위를 위해 유학길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2007 년 8월에서 2009년 7월, 약 2년간 석사 공부를 했던 그 시절이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가장 힘들었다고 하는데요, 각각 다른 두 사람이 하나의 가정 본교회를 출석하고 얼마 되지 않아 사역 박람회가 열렸었습 을 이루면서 누구나 겪어야 했던 시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니다. 전 교인이 가능한 한가지 사역에 헌신하면 좋겠다는 목 아픔만큼 성숙해진다고, 많이 다투면서 그 속에서 다져진 새 사님의 말씀에 무조건 순종했던 장미라 자매님… 전혀 주저 내기 부부는 첫째 윤슬이를 임신하면서 부모로서 자신들의 모 함 없이 새가족반에 사인업을 했고 지금껏 쭉 4년간 한결같은 습을 뒤돌아보며 반성하게 되었고 서로의 다른 점을 이해하기 마음으로 섬기고 계십니다. 게다가 아이 셋을 돌보면서 사역 위해 노력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좋은 부모, 부부가 되기 위 에 헌신하기에는 버겁다며 아내를 배려하는 마음에 같이 사 해 갖가지 서적과 매체를 보고 들으면서 부부 관계를 발전시 역하고 계시는 김태양 형제님, 이렇게 주일 아침마다 밝은 얼 켜 나갈 수 있었지만, 무엇보다 그 이전에 하나님의 자녀로서 굴로 교인분들을 반겨주는 부부가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저 세상을 살아가는 믿음과 하나님께서 끊임없이 베푸시는 한없 절로 마음이 따뜻해지게 합니다. 김태양 형제님은 2018년 교 는 사랑과 공의를 통해 각자의 오만과 교만함이 깨졌기 때문 회 전체 목장 개편으로 마하나임의 2목장을 인도하는 목자에 에 가능했다고 고백합니다. 도 헌신하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몇 년간 목자라는 자리를 맡 을 그릇이 되지 않는다며 자신의 한계를 정해놓고 내려놓지 하나님과의 관계회복 못하고 있었지만, 많이 배우고, 많이 깨지고, 너무나 많은 것 결혼과 함께 낯선 곳에서의 공부 시작, 자녀출산, 육아라는 분 을 누리고 있는 마하나임이라는 공동체에서 하나님의 사역 주한 삶으로 인해 주일 예배를 드리는 게 다였고, 한국에 돌아 에 일조해야겠다는 결단하는 마음을 기도 가운데 주셨습니 가서도 둘째 예슬이와 막내 윤건이를 낳고 키우느라 믿음 생 다. 물론 목장을 맡은 초기에는 인도자로서 책임감 때문에 부 활에 열심을 내지 못했던 그때 모습을 돌이켜 보면 후회스럽 담감이 크게 다가올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목자는 목원들 고 부끄럽다는 김태양 형제님과 장미라 자매님은 노스캐롤라 을 이끌고 나아가는 리더로서의 역할보다 오히려 낮은 마음 이나에서의 삶이 새로운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박사 공부를 으로 목원들을 섬기는 자임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그 후에 하기 위해 다시 유학을 계획하던 김태양 형제님은 교수로서 는 목장모임에 대한 부담감이 하나도 없어지고 기다려졌으 의 실력을 쌓기 위해 좋은 학교를 결정해야 하는 건 당연하지 며, 너무나 사랑스럽기만 한 목원들에게 무엇이든지 마냥 베 만 2명에서 5명으로 불어난 가족의 생활환경 또한 꼼꼼하게 풀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목자라는 자리 따져보아야 했습니다. 고심 끝에 결정한 곳이 North Carolina 를 통해 ‘이웃을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의미하는 바가 State University였고, 5년간의 한국 생활을 정리해서 2014년 진정 무엇인지, 어떻게 실천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지를 조 랄리로 왔습니다. 정착하는 데 도움을 주신 최영태 형제님 가 금씩 배우고 있습니다. 정으로부터 랄리제일한인침례교회에 대해서 소개를 받게 되 었습니다. 이곳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모임에 초대를 받아 가 내년 초에 한국으로 돌아가는 김태양 형제님과 장미라 자매 벼운 마음으로 금요일 저녁에 교회를 가게 된 곳이 바로 마하 님 부부는 이곳을 떠나는 아쉬움, 다시 한국에서 새롭게 적응 나임 모임이었습니다. 그때 김영수 집사님께서 복음과 주님 해 가야 하는 두려움과 기대감으로 만감이 교차합니다. 교회 38 순례자의 샘터 www.soonsam.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