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자의 샘터 2017 SUMMER | Page 32

누구일까요? -정답 “아이들을 돌보며 마음의 위로를 받았죠 오히려 제가 더 감사했습니다” - 유아부 12년 봉사하신 오태화 형제 - 유승림 기자 어릴 때여서인지 교회가 참 친근하게 느껴졌습니다. 거부감 없이 예수님 말씀을 받아들였고, 주기도문과 사도신경을 외우고, 기도하는 법과 말씀 읽는 법도 배웠습니다. 교회에 가는 것이 즐거웠고 행복했습니다. 그러나 점점 나이가 들 면서 주일에도 친구들과 밖에서 놀고 싶다는 생각이 커졌습 니다. 버스를 한참 타고 교회를 가야 하는 것도 귀찮아져서 결국 중학교 1학년 이후에는 점점 교회에 나가지 않았습니 다. 그래도 종교가 뭐냐고 누군가 물으면 기독교라고 대답은 했다네요. 중고교 시절 신앙에 대한 고민도 많이 했 고요. 하지만 다시금 교회에 나가게 된다면 그땐 정말 제대 오 로, 마음 잡고 열심히 다녀야 할 것 같아서 왠지 교회 출석을 태화 형제는 우리 교회 유아부에서 12년간 보조교사 미루게 되었다고 하네요. 이제와 돌아보니 미국에 와서 교회 로 일하다 건강상의 이유로 최근 봉사를 그만두었습 에 다시 다니게 된 것도 모두 하나님의 계획이었던 것 같다 니다. 단 몇 년이라도 꾸준히 하기 힘든 일을 지난 2005년 봄부터 올봄까지 묵묵히 감당해 온 오태화 형제. 교회 고 말합니다. 는 그동안의 노고에 고마움을 표시하며 오 형제에게 감사패 ◊  미국 생활의 시작 를 수여했습니다. 오태화 형제 가족은1992년 미국에 이민을 오게 되었습니 다. 아버지 직장을 따라 뉴욕에서 잠시 살다가 루이지애나 오태화 형제가 이렇게 오랜 시간 아이들 곁에서 봉사하게 된 로 이주했습니다. 그곳은 날씨가 덥고 늪지대도 많아 습한, 계기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아주 조용한 시골이었습니다. 한창때의 젊은 나이에 시골에 ◊  호기심에 찾아간 교회 서 지내려니 답답하고 무료했습니다. 2년간 그곳에서 힘든 미국 생활 적응기를 마치고 현재 살고 있는 노스캐롤라이나 오태화 형제는 1972년 12월 26일 한국 경상남도 사천에서 랄리에 정착하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교회와의 인연 태어났습니다. 교회에 나가기 시작한 것은 부산에서 살던 초 도 시작됐죠. 등학교 3학년 무렵입니다. 교회에 가면 선물을 준다는 말에 호기심이 생겨 찾아가게 된 것이죠. 이 교회, 저 교회를 오태화 형제가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한 것이 1995년부터이 다녀보던 중 그 동네에서 큰 유년부가 있던 서부 교회에 정 니 벌써 20년이 넘었네요. 당시 청년부에서 함께 활동했던 식으로 출석하게 됐습니다. 동생이랑 함께 교회에 다니며 많 친구들은 어느새 아이 엄마, 아빠가 돼 있다고 합니다. 은 친구들을 사귀었습니다. 32 순례자 의 샘터 www.soomsam.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