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자의 샘터 2017 Fall | Page 42

가정탐방
고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 그 후 , 교회는 하 나님 말씀과 믿음으로 마음을 치료받는 병원이라는 생각과 믿음으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셨고 어느덧 17년의 시간이 쌓여갔습니다 .
◇ 이민 그리고 새 삶의 시작
1998년 , 5월 김일용 집사님의 누님이 살고 계시는 로스앤젤 레스를 거쳐 9월 이곳 놀스캐롤라이나 , 캐리로 온 가족이 이 민을 왔습니다 . 솔직히 , 김옥자 집사님은 한국을 떠나기 싫 으셨답니다 . 열심히 믿음 생활하며 다져놓은 삶의 터전을 떠 나기가 당연히 쉽지 않았겠죠 . 그러나 미국에 대한 큰 비젼 을 품은 아들을 위해 ,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 , 김일용 집사님 은 가장으로서 큰 결심을 하셨습니다 . 반평생 한국에서 살다 가 뒤늦게 미국으로 삶의 터전을 바꾼 집사님 내외뿐 아니라 자녀분들도 처음 몇년 동안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적지 않게 힘들었습니다 .
다행히 아들이 진학한 고등학교에서 ESL 수업을 담당하시 던 노은실 집사님을 만나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 고등학교 3 학년 , 1년 동안 학교수업을 들으며 대학교에 합격했을 정도
면 얼마나 열심히 공부했는지 상상이 가시나요 … 그러나 단 지 1년동안 미국의 고등학교를 다니고 난뒤 대학교 공부까 지 하기에는 벅찼던 아들은 대학교 1학기를 마치고 미군 해 병대에 지원했습니다 . 그런데 이게 왠일일까요 . 군대에 들어 가서 얼마 지나지 않아 이라크 전쟁이 발발하고 소속 해병 대가 전쟁에 파병되었습니다 . 생사조차 확인 되지 않았던 몇 달간 , 집사님 가정의 마음 고생은 말로 표현 할 수 없었고 , 아마 제일 힘든 시기가 아니었나 싶네요 . 이렇게 어려운 시 간을 견디어 낼 수 있었던 것은 기도의 힘이었습니다 . 제대 후 , 수요예배에서 간증한 바 있지만 , 그 당시 적군에 둘러싸 여 갖혀서 모든 보급이 차단되고 물도 마시기 힘든 상황에 서 바로 옆에 있는 동료가 적탄에 의해 쓰러져 가는 것을 보 면서도 마음은 전혀 불안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 그것은 전적 으로 교회 성님들을 포함은 모든 분들의 기도 덕분이라고 두 집사님께서 입을 모아 말씀하시네요 . 가족의 결정으로 한국 의 정든 친구들과 헤어져 낯선 땅에서 온 딸은 다른나라의 언어를 익히고 새로운 친구들과 사귀는게 그리 만만치 않았 습니다 . 몇 년간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고픈 마음이 간절했지 만 점차 친구들도 생기고 교회에 다니며 차츰 미국생활에 적 응해 갔습니다 .
2006년 중국선교를 다녀오면서 생각하는 관점이 달라지고 보는 시야가 많이 넓어져서 불확실한 장래 진로를 결정할 수 있게 되었답니다 . 현재 아드님은 치과의사로 , 따님은 치위생 사로 자기 분야에서 단단히 한 몫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그 모든 것을 하나님께 돌리셨습니다 . 다만 , 어렸을때 자녀 들과 함께 말씀 나누고 하나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시간을 갖지 못해서 못내 아쉽다고 하네요 .
◇ 현재 , 그리고 앞으로
42 순례자의 샘터 2017 가을호
교회 부근에 여러저기 집들이 지어지는 것을 보며 교회 가까 이에 살면 교회 생활은 물론이고 새벽기도에 나가기도 훨씬 수월하겠다는 생각에 집에 대해 기도하셨고 , 캐리로 처음와 서 딱 1년만에 현재의 집을 장만하셨습니다 . 당연 교회 근처 이지요 . 한국에서 장로교회 예배를 드렸던차라 침례교회에 익숙해 지는데 시간이 좀 필요했습니다 . 다른 교회를 생각조 차 하지 않으셨던 것은 워낙 교회 옮기는 것을 좋아하지 않 으시고 언젠가 들었던 , 믿는자는 어느 교회이든지 다 소화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