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자의 샘터 2016 Fall/Winter | Page 19

1885 년 4 월 5 일 부활절날 아침 감리교 선교사인 언더우드 선 교사가 쓴 기도문이란다 . 호러스 G . 언더우드가 인천 제물포 항에 도착한 것은 1885 년 4 월 5 일 , 부활절날 아침이었다 . 감 리교 선교사인 아펜젤러와 같이 미지의 조선 땅을 밟았으니
조선 땅에 복음을 전하는 개신교 최초의 선교사였다 . 이조 말 기의 고종 때였단다 . 조선의 내부로 들어가 보려고 온갖 노력 을 했으나 조선의 마음은 그들에게 보이지 않았다 . 조선의 마 음이 보이지 않으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조차 그들에 게는 보이지가 않았었을 것이다 .
»»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지면
수 있었을까 ? 130 년이 지난후 밀알이 되어 기꺼이 땅에 썩어 지기를 마다하지 않았던 그들의 사랑이 헌신이 어떠한 열매 를 거두었는지를 ….
»»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새벽녘 시원하게 쏟아져 내리는 굵은 빗줄기에 홀로 깨어 오 랫동안 읽고 싶었지만 읽지 못했던 책 한권을 끄집어 내어 읽 기 시작했다 . 태풍처럼 내 마음을 흑적도 없이 휘몰아 쓸어 버리던 격한 감정의 소용돌이는 광혜원에서 마주한 밀알들 과 그 삶의 흔적들을 바라본 후 많이 잦아 들었다 . 고집스런 듯 얼룩진 어둠은 이제 걷히고 아침이 오려는지 환한 빛이 방 안 가득 차오르기 시작했다 . 아파트 베란다 앞으로 보이는 북한산은 이 비가 그치고 나면 그 푸르름이 더욱 짙어질 것이다 . 메마른 대지는 촉촉히 젖고 시 원하게 쭉쭉 뻗은 나무들은 모든이들에게 시원한 그들이 되어줄 것이다 . 그리고 계곡물은 그 풍성한 물줄기를 한없이 흘려보낼 것이다 . 많은이들이 그 짙은 푸르름이 주는 휴식과 평안을 풍성한 물줄기 가 주는 청량함을 여름 내내 즐길수 있게 될것이다 . 아주 오래전 부터 그랬던 것처럼 …… 생각이 여기 에 다다르자 “ 왜 ” 라는 생각은 멈췄다 .
선교사 신분을 감추고 미국공사관 부속 의사로 비밀리에 복 음을 전하던 알렌은 갑신정변때 칼에 찔려 거의 죽게된 민비 의 조카 민영익을 명주실로 꿰매고 약을 달여먹여 살린것을 고종에게 인정받아 궁중 어의로 활동하게 된다 . 서양식 의술 과 전문 의료인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된 고종은 최초의 서양 식 병원 광혜원 설립을 허락하게 된다 . 알렌은 후에 고종이 하사한 이름 제중원으로 바뀐 광혜원의 초대 원장이 된다 . 그 곳에서 인턴식 실기 , 실험 , 교과서와 강의로 이뤄진 최초의 서양식 의학 교육이 시작된다 . 제중원은 후에 록펠러가 세운 석유회사의 CFO였던 세브란스의 막대한 후원금을 받아 새 병원이 건축되면서 세브란스 병원으로 이름이 바뀐다 . 예배당과 학교를 소망하던 언더우드는 최초의 개신교회인 정 동교회와 연희전문학교를 세우고 아펜젤러는 배제학당을 세 워 기독교식 교육과 함께 복음을 전했다 . 누가 상상이나 할
치매로 나날이 기억을 잃어가던 친정 아버지는 어
느날 아들에게 시체 기증동의서에 싸인해 달라는 말과 함께 본인의 결정을 말씀하셨단다 . 그리고 다른 가족 에게는 말하지 말것을 …. 40여년 전 자신을 품어 목숨을 살 렸고 , 누웠던 사람을 일으켜 세우고 , 걷게 했고 마침내 평범 한 일상으로 돌려 보내주었던 수많은 의료진에게 그 고마움 을 온몸으로 말하고 싶으셨을 것이다 . 죽음과 싸우며 고통스 러운 삶을 모질게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 고통을 끝내 고 새생명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면 기꺼이 몸을 주고 죽은 몸은 기꺼히 실습용이나 연구용으로 쓰이고 싶다 고 말하고 싶으셨을 것이다 . “ 기억은 머리에 남는 것이 아니 라 가슴에 남는 것이다 ” 말했던가 ? 기억은 잃어 버렸을지 몰 라도 아버지 가슴은 기억하고 있었나보다 . 어린 시절 나는 아 버지의 사고로 거진 1년을 병원에서 생활해야 했다 . 병원 구 석 구석은 나의 놀이터였고 의사 선생님들과 간호원 언니들 은 나의 친구였으며 다른 병실에 병문안 오시는 분들은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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