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MAX KOREA Journal Vol.7 | Page 21

HISTORY JOURNAL VOL.7 2017 도심 오피스빌딩 시장의 역사 조선시대 의정부 . 육의전에서 21세기 초고층 빌딩까지 “도시는 기억으로 살아간다”(The city lives by remembering)고 미국 화신백화점 (1931년) 의 시인 랠프 왈도 에머슨은 읊은 바 있다.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광화 문 일대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오피스 밀집지역 중 하나다. 광화문 ・ 도 심 일대가 우리나라 정치 ・ 경제 ・ 문화의 중심부로 자리 잡은 것은 600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시대의 서울은 동서남북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서울의 북쪽 산인 북악산 아래에는 조선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경복궁을 배치하고 경복궁 정문인 광화문 앞에는 행정관청이 밀집해 있는 가장 넓은 도로 인 육조거리가 남쪽으로 뻗어 있었다. 광화문 앞으로 왼쪽 즉 동쪽으로 맨 앞에 의정부가 자리 잡고 그 남쪽 으로 이조(吏曹)와 한성부(漢城府), 호조(戶曹)가 있었으며 오른쪽 즉 서 쪽으로는 예조(禮曹)를 위시해서 사헌부(司憲府), 병조(兵曹), 형조(刑 曹), 공조(工曹) 등의 관아가 위치하였다. 1950년대 서울 도심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서울의 고층 건물은 손으로 꼽을 정도였다. 최고층 건물은 지금의 롯데호텔 자리에 있던 8층짜리 반 조선시대의 대표적 상권은 운종가를 중심으로 형성됐다. 사람들이 구 도호텔이었다. 이웃 조선호텔과 한국은행 모두 일제가 남긴 건물이었다. 름같이 몰린다 하여 운종가(雲從街)라 하였다. 그 위치는 대략 혜정교(광 1955년에 종로 사거리에 2층짜리 신신백화점이 신축됐고, 1957년 광 화문우체국)부터 철물교(종로3가 입구)까지였다. 화문 사거리와 을지로 1가에 3층짜리 국제극장과 5층짜리 개풍빌딩이 운종가를 이루는 상점 중 조선시대 독점적 상업권을 부여받고 국가 각각 들어섰다. 1958년 남대문에 7층짜리 그랜드호텔이 문을 열자 구경 수요품을 조달한 여섯 종류의 큰 상점을 <육의전>이라 불렀다. 육의전 인파가 몰렸다. 당시 서울 도심부의 평균 층 높이는 2층이 채 되지 않았 은 비단상점인 <선전>, 무명상점인 <면포전>, 명주상점인 <면주전>, 종 다. 도심부를 고층화하려고 주요 간선도로변의 건물 높이를 3~5층 이상 이상점인 <지전>, 모시베상점인 <저포전>, 생선상점인 <내외어물전>이 으로 정할 정도였다. 있었다. 오늘날 종로 상권의 효시 격이라 할 수 있다. 화신백화점은 1930~50년대의 삼성전자 ‘한강의 기적’을 통한 도심의 지각변동 일제 말기인 1940년부터 1965년까지 서울은 잠자는 도시였다. 1937년 개항과 더불어 서구의 근대문명이 밀려오면서 도심은 일대 변혁을 맞 중·일 전쟁과 1941년 태평양전쟁이 터져 건축자재를 구할 수 없었고, 한 이한다. 1899년 전차가 개통됐고 1900년엔 전기 가로등 3개가 종로의 밤 국전쟁이 이어지면서 건축 행위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부분 거리를 대낮처럼 밝힌 이후 가장 아름답고, 활기차고, 제일 좋은 상점과 건물이 목조건물로 수명 30년을 다한 상태였다. 시장이 있는 곳으로 군림했다. 1931년 지금의 종로타워 자리에 한국인이 세운 최초의 현대식 백화점인 화신백화점이 문을 열었다. ‘한강의 기적’은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시작된 1962년부터 약 20년 간의 고도성장기를 일컫는다. 이 기간 서울은 경천동지할 변화를 주단 거리, 양복점 거리, 서점·출판사·학원, 포목점, 귀금속 상점의 성 겪는다. 서울의 공간 변화는 1966년부터 1980년대까지 15년간 거의 이뤄 쇠가 거듭됐다. 육의전(명주·종이·어물·모시·비단·무명)의 명맥이 살 졌다. 주택지·도로·상하수도·지하철 등 현대 서울의 하부구조가 이때 아있었다. 근래 들어 국내 최대의 귀금속거리로 우뚝 서게 된 데에는 배 거의 갖춰졌다. 경이 있다. 1970년대 초까지 서울 도심은 낮고 낡았다. 5층 이상의 드문드문 있을 화신백화점은 1930~50년대의 삼성전자였다. 화신은 식민시기 서울 정도였다.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에 의해 1973년 소공동, 서대문, 무교·다 의 신화요, 대표 브랜드였다. 1937년 신축한 지하 1층 지 상 6층의 화신백 동, 을지로1가, 장교동, 도렴동, 적선동, 태평로2가, 서린동 등이 재개발지 화점은 서울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고 첨단빌딩이었다. 우리나라에서 구로 전격 고시됐다. 이후 80년대 중반까지 20층 안팎의 빌딩이 우후죽 처음으로 엘리베이터와 옥상 전광뉴스판이 설치됐다. 순처럼 솟아올라 스카이라인을 올려놓게 된다.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