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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럼 태국 사랑의 교회 김태완 목사의 사랑의 컬럼 고통과 마주칠 때 고통 자체보다 태도가 중요하다 인생을 살다 보면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 난다. 인생은 변수로 가득하다. 가는 길의 행로 를 한순간에 바꾸어 놓는 일들이 벌어진다. 고 통의 경중은 있지만 고통은 피할 수 없다. 고통 은 삶을 흔들어 놓는다. 고통과 마주칠 때 고통 자체보다 태도가 중 하다. 고통에 대한 잘못된 반응은 더 큰 고통을 가져올 수 있다. 큰 고통을 당했을 때 일반적으로 부인, 분노, 도 피, 수용의 단계를 거친다. 가장 먼저 일어나는 현상은 부인이다. 고통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 부인하고 싶어진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현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 은 것이다. 고통을 친숙하게 받아들일 사람은 아무도 없다. 반갑지 않은 이방인처럼 밀고 들 어온다. 고통에 대한 정직한 첫 반응은 절망하 고 절규하는 것이다. 아프면 아프다고 소리를 질러야 한다. 충분히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정상이다. 억지로 감정을 무시하려고 하면 안 된다. 타인의 시선 을 너무 의식하지 않아도 된다. 감정에 정직하 게 반응하고 표현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고통을 당하고도 태연하게 보이려는 것은 건강한 반응 이 아니다. 분노가 일어날 때 분노해야 한다. 힘 들어 울고 있는 사람에게 울지 말라고 하는 것은 비인간적인 일이다. 고통을 임의로 미화시키거 나 왜곡시켜서도 안 된다. 있는 그대로 바라보 아야 한다. 여기에는 적절한 시간이 필요하다. 사람에 따라, 크기에 따라 고통 하는 시간의 길 이도 달라진다. 시간이 흐르면서 감정은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 으며 고통으로부터 서서히 빠져 나오는 순간을 맞는다. 수용의 단계로 접어드는 것이다. 받아 들일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한 수용이다. 죽을 것 같았던 것이 삶의 일부가 된다. 물론 슬픔의 강을 건너는 일은 간단하지 않다. 때로는 눈물 이 강을 이루고 대해(大海)를 향해 끝도 없이 흐 른다. 고통의 사연은 사람마다 다르다. 고통은 다면체다. 특히 가까운 사람과의 이별, 질병, 죽음으로 인한 고통의 강도는 다양하다. 대개는 준비할 겨를도 없이 맞기 때문에 충격은 크다. 갑자기 맞는 고통의 현실은 낯설기만 하 다. 나이가 들고 병이 드는 과정, 죽음을 목전에 66 한아시아 두는 과정에서 현실을 받아들이기 싫 지만, 서서히 받아들이는 훈련을 누 구나 해야 한다. 받아들이기를 거부 하는 태도가 강할수록 더 큰 역풍을 만나게 된다. 몸과 마음이 함께 힘들 어진다. 늙는 것을 부정하지 않아야 한다. ‘안티에이징’에는 한계가 있다. 상실과 쇠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 는 연습을 해야 한다. 받아들임의 단 계가 중요하다. 수용의 단계에 이르 면 새로운 빛이 비추어진다. 포기 이 후에 주어지는 은총이 있다. 긴 터널 사랑의 을 지나면 빛이 다가오게 된다. 이전 에 몰랐던 평온의 순간이 찾아온다. 살아갈 힘 이 주어진다. 우리 주위에는 알 수 없는 수많은 고난의 파도 에 난파를 당하거나 급류에 떠내려간 사람들이 많다. 고통의 풍랑은 거칠고 혹독하다. 삶에서 고통이 없기를 바라는 것은 꿈에 불과하다. 고 통과 함께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고통에 대한 적절한 반응을 익히는 것이다. 인생에 고통만 있는 것은 아니다. 시련이 겹치 는 곳에서도 기쁨의 순간은 다가온다.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듯이, 인생에 봄날은 온다. 슬픔 이 영원히 계속될 것 같았는데 어느 순간 기쁨이 내 곁을 맴도는 것을 경험한다. 불현듯 고통이 찾아왔듯이 예기치 않은 순간에 기쁨도 다가온 다. 고통을 통과하는 과정은 아픈 것이지만 그런 과 정을 통하여 얻는 축복이 있다. 고통을 통하여 현재보다 미래에 대한 소망이 더 짙어진다. 무 엇보다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고 겸허함을 배운 다. 죽음의 위협이 커질수록 삶은 더욱 명확해 진다. 고통의 무게를 견디려면 영적 힘을 길러야 한 다. 고통이 삶을 짓눌러도 영혼은 휘어지지 않 아야 한다. 고통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 하나님은 고통을 면하게 해 주시기보다 고통 가 운데 함께 하신다. 십자가는 고통의 상징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고통을 이해하신다. 고통을 통 하여 또 다른 이야기를 써내려 가게 하신다. 교회 김태완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