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자의 샘터 Soonsam 2019 Spring - Page 30

가정탐방 있으면 희선 자매님이 옆에 다가와 찬양을 불렀다고 하네요. 겠다고 하셨던 희선 자매님 아버님 귀에까지 들어갔습니다. 누군가의 말이 사실인지는 우리 각자의 판단에 맡기고, 여하 당신이 군인이셨기에 군인의 아내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힘 튼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서로에 대한 호감이 쌓여간 것은 틀 든지 잘 아셨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태현 형제님이 처음 인사 림없어 보입니다. 태현 형제님이 구체적으로 군인에 대해 생 드리러 간 날 희선 자매님의 아버님께서 먼저 결혼이야기를 각을 하게 된 계기는 어느 날 들었던 목사님의 설교 때문이었 꺼내셨고 그렇게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초고속으로 결혼 준 습니다. 다윗과 여호수아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그날따라 그 비가 진행되어 임관식(사관생도가 장교로 임명받는 날)때 양 말씀이 형제님께 큰 은혜로 다가오면서 기도하는 중에 자신 가 상견례 하여 그해 소위 계급장을 달고 결혼을 했습니다. 이 군인의 길을 걷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깨달았습니다. 특 히, 여호수아를 하나님이 세우실 때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 의 하나님이 됨이라’ 하신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마음을 굳 게 먹었습니다. 고생길이 뻔히 보이기에 주위 모든 사람이 극 구 말렸으나 하나님의 비전이 너무나 분명하였고 힘든 과정 중에도 지켜주고 보호해 주시겠다는 강한 믿음을 주셔서 떨 리는 마음으로 부모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완강하게 반대하실 줄 알았던 부모님이 뜻밖에 쉽게 허락하셨고 마침내 사관학 교 생도로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15년간 형제님이 걸어 온 군인의 길이 쉽지만은 않았지만, 그 과정 안에서 하나님께 서 많은 것을 주셨답니다. 인생의 반려자 하나님의 은혜 사관학교에 진학하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뚜렷한 비전으로 인해 학업에 대한 확실한 목적의식이 생겼고,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공부했던 김태현 형제님은 수석 임관으로 졸업했습니 다. 통신장교로 임명받아 대구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하였으나 군인의 특성상 한곳에 오래 머무를 수 없었기에 최소 몇 개월 에서 일 년마다 한 번씩 이사를 했습니다. 계속해서 공부할 계 획으로 준비한 유학이 순조롭게 진행되어 결혼 2년 차에 나라 에서 학비를 지원해 주는 위탁교육으로 미국 알라바마 주 어 번주립대학교(Auburn University)에서 석사 공부를 시작합니 다. 친지 친척이 없는 먼 외지에서 어린 하슬린의 육아와 둘 째 하아린의 임신, 출산이 결코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러나 꽤 오랫동안 알고 지내왔지만 두 분이 결정적으로 교제하게 이 모든 과정 하나하나가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졌음을 누 된 것은 ‘꽃다발 사건’ 덕분입니다. 그날도 저녁에 교회 행사 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고, 그래서 2년의 힘든 시기를 견디고 가 있어서 학교 전시회에서 받은 꽃다발을 들고 교회에 가게 버틸 수 있었습니다. 되었고, 평소 꽃을 좋아하지 않았던 터라 희선 자매님은 버리 는 것보다는 누굴 주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에 가까이에서 피 아노를 치고 있는 태현 형제님에게 꽃다발을 주었답니다. 태 현 형제님은 본인에 대해 호감을 느끼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 고, 이를 계기로 형제님은 희선 자매님에게 자주 연락했습니 다. 통화하는 횟수가 많아지면서 서로가 통하는 점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결국 아무도 모르게 비밀로 둘은 사귑니다. 하지만 사랑과 기침은 감출 수 없다는 말도 있듯이 군교회 사 람들이 눈치를 채고, 생도를 사귀면 다리몽둥이를 부러뜨리 30 순례자의 샘터 하나님의 비전 준비과정이 생각보다 수월하게 이루어졌던 석사 때와는 달리 박사 공부를 할 수 있기까지는 10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김 태현 형제님이 계속해서 공부하고 싶었던 이유는 사관학교 교수가 되어서 생도들을 잘 양육하여, 그 생도들이 임관하여 전국으로 퍼져나가는 군 선교의 꿈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 다. 그러나 석사 때와는 다르게 박사를 위한 위탁교육 시험을 치를 때마다, 될 듯하면서 떨어지기를 계속하였고 그럴수록 www.soonsam.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