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자의 샘터 2017 Winter - Page 33

이 한 순간의 선택과 같은 결단일지라도 앞서 말한 다양한 🙇 배경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것은 보통의 일이 아니다. 내가 어느 목표점을 향해 천천히 완만한 오르막을 오르고 있 노라면, 대부분의 종교인들은 제자리에서 힘차게 뛰어올라 예수님은 긍휼히 여기십니다 저 높은 곳까지 한번에 도달하길 바라는 듯 하다. 부자가 가 난을 이해할 수 있을까? 가난한 사람이 부한 사람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까? 사람마다 배경이 다르고 성격이 다르듯 믿음에 이르게 되는 경위 또한 다름이 분명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본질적 사람도 긍휼을 베풀 때가 있습니다. 어려운 분들에게 성금을 보내기도 하고, 재난을 당한 분들께 온정을 베풀기도 합니다. 다름을 우선 인정해 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물론 힐난의 목 소리를 내고 싶어 위와 같이 서술한 것은 아니다. 나는 그저 이런 것을 긍휼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일반적으로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을 교회 내부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사람에게도 있습니다. 의 사람들, 즉 대체적으로 신앙이 깊으신 분들에게 공유하 고 싶다. 그러나 사람이 베푸는 긍휼은 한계가 있습니다. 나는 아직도 내가 종교인이냐고 물어보면 자신 있게 Yes라 고 하지 못한다. 여전히 그 완만한 오르막길을 가고 있기 때 문이다. 그러나 나는 천천히 바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무 기력해 보이던 기도조차 이제는 시도하고 있다. 내가 가지고 있던 오해를 깨닫고 복음을 좇으려 하고 있다. 다 나의 모습 우물이 아무리 깊어도 바닥이 있고, 산이 아무리 높아도 꼭대기가 있듯이 사람의 긍휼도 바닥이 있습니다. 을 받아들여 주고 그 믿음의 씨앗을 가슴속 불모의 밭에 심 고 적셔준 주변분들 덕이다. 끝으로 나는 운좋게 좋은 곳에 하지만, 서 신앙을 배우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를 인정해 주고 나를 예수님의 긍휼은 넓습니다. 변화시켜 준 마하나임 공동체 한 분 한 분에게 감사의 마음 예수님의 긍휼은 깊습니다. 을 표한다. 예수님의 긍휼이 미치지 못할 한계점은 없습니다. 예수님은 나를 긍휼히 여기시고 오늘도 손목을 잡으십니다. 여인이 어찌 그 젖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 찌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이사야 49:15) 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