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자의 샘터 2017 Spring - Page 31

다 . 그리고 지금 아빠한테 하고 싶은 말을 해주면 한글로 메 시지를 써주겠다고 하니 눈물을 글썽인다 . 그렇게 해서 그녀 와 머리를 맞대고 같이 눈물을 흘리며 카톡 메시지를 만들어 보내었다 . 그 때 한국은 깊은 밤이었지만 , 내가 쓴 한글 메시 지가 사라질까 봐 걱정된다며 , 기다리지 못하고 바로 보내고 자신의 가족사진도 보냈다 .
나는 오늘을 시작하며 , 전에 해본 적이 없는 기도를 했었다 . 그 기도에 힘입어 오전을 평온한 가운데 성령님이 내 곁에 계심을 의식하며 보냈다 . 그 덕분에 오후에 내게로 온 어떤 사람의 근심에 집중할 수 있었다 . 저녁때 쯤 또 한 번의 도 전이 와서 요동쳤지만 넘어지진 않았다 . 주님 덕분에 오늘 하루 실패하지 않았다 . 나는 오늘 내 손가락으로 대신 썼던 그녀의 메시지를 계속 기억했기 때문이다 . “ 아빠 ! 안녕하세 요 ? 저 000 예요 . 저도 가족과 함께 잘 지내고 있어요 . 그동 안 제 전화기가 고장이 나는 바람에 기록이 없어져서 연락할 수가 없었어요 . 지난 8월부터예요 . 아빠의 사진을 보내주세 요 . 보고 싶어요 .”
나는 동시에 나의 하나님 아버지께 편지를 쓴 것이었다 . 그 녀의 아버지께 보낸 것처럼 . 그녀가 보내기를 눌렀을 때 , 나 의 것은 분명 높이 올랐을 것이다 . 그분 계시는 저 높은 곳 을 향하여 !
나는 그녀가 돌아가고 난 후 생각했다 . 모든 사람에게 당연 한 현실이 누군가에게는 절박한 현실로서 존재한다는 것을 . 새삼 깨달은 것도 있다 . 나의 한글 실력 (?) 이 이렇게 누군가 에게 빛이 발한다는 사실을 . 그녀의 친아빠가 한동안 또 딸 을 잃었다고 느끼고 있을 때 , 미국에서 딸의 가족사진과 함 께 그녀의 아빠가 읽을 수 있는 언어로 소식이 와서 큰 기 쁨을 누리기를 …. 그렇게 상상하니 뿌듯한 마음이 드는 것 이다 .
한국 6 · 25 전쟁 후 전쟁고아로 자란 아버지가 , 삶이 힘겨운 젊은 나이에 첫 딸을 낳고 또다시 자신이 자란 고아원으로 딸을 보낼 수밖에 없었던 지난 과거는 분명 아픔과 상처이 지만 , 지금이라도 딸의 존재를 인정하고 , 가족으로 환영해준 그녀의 친아버지 , 참으로 다행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 아버 지와 딸 사이에 언어라는 커다란 장벽이 존재하지만 , 장벽을 타고 넘어 흐르는 사랑에 힘입어 관계가 지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 그녀는 아버지와 함께 아버지가 자랐던 고아원도 방문해서 아버지를 키워준 목사님도 만났다고 한다 . 나는 그 목사님이 너의 grandfather라고 하니 그렇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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