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자의 샘터 2016 Summer - Page 30

누구일까요? -정답 “매일이 소중한 선물, 기도의 힘을 믿어요” 갈릴리 1목장 고영숙 어머님 유승림 기자 습니다. 다행히 일하면서 사용하는 영어는 제 한적이어서 직장생활에는 곧 적응을 할 수 있 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우리 교회와의 행복한 인연이 시작됐습니다. 권병순 집사님을 따라 교회출석 을 해온지 어느덧 33 년여. 고영숙 어머님은 그 오랜 세월 동안 단 한번도 교회에서 다툼이 있 는 것을 본 적이 없다며 “우리 교회는 정말 건강 한 교회”라고 자랑스러워 하십니다. 초창기의 교회는 30 가정 정도가 전부라 가족 적일 수밖에 없었다고 하는데요. 한 달에 한 번 1 933 년생인 고영숙 어머님은 무려 8 남매 중 넷째로 태어 씩 교인들 생일파티를 해줄 정도로 모두 가깝게 나셨습니다.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생후 3 개월 만에 온 지내셨다고 하네요. 그런 가운데 고영숙 어머님의 요리 실력 가족이 만주로 이주해 그곳에서 자랐습니다. 해방된 후에야 은 더욱 빛을 발했습니다. 교인들의 생일케이크를 직접 구우 다시 한국을 찾았지만 곧 6.25 전쟁이 일어나 피난을 가야했 셨고, 그 후로도 많은 교회 행사를 위해 빵을 굽거나 음식을 습니다. 그야말로 격동의 어린 시절을 보내셨지요. 만드는 일을 거들곤 하셨습니다. 미국으로 오게 된 것은 이곳 노스캐롤라이나에서 NC State ◊  매일 새벽 만나는 하나님 대학 교수로 재직하다 지금은 돌아가신 고영숙 어머님의 오 빠를 따라서입니다. 유학생으로 가장 먼저 미국에 온 오빠가 형제들을 모두 초청하신 거죠. 형제들이 줄줄이 미국행 비행 기에 올랐고, 어머니는 한국에서 부모님 두분 다 돌아가신 후인 78 년께 뒤늦게 미국땅을 밟으셨습니다. 처음엔 여동생이 있는 뉴저지에서 2 년간 지내다 이제는 고 향이 된 이곳으로 오게 됐습니다. 낮에는 메리어트 호텔 주 방에서 보조로 일했고, 밤에는 영어 공부를 했습니다.